#19. 1년 하고 반.
1.533일
시간이 참 빠르다. 하루가 빠른 거야 이 직업의 보편적 특성인 게, 오픈시간까지 가능한 많은 일을 해내야 하기에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잠깐 앉는 식사시간마저 후다닥 흘러가고, 남은 시간에 잔업을 처리하면 또다시 저녁서비스를 준비하고, 그러고 나서 퇴근시간이 되면 정리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그 일을 10년을 하고, 내 가게를 500일을 넘게 했다.
그중 안암을 하면서 안된 것과 잘된 것, 얻은 것을 약소하게 정리해 본다.
2. 안된 것
계획대로 안된 가장 큰 건은 역시 직원 구하기다. 직원을 구하는 게 너무 어렵다.
올해는 일단 계획을 바꿨지만, 이 작은 가게에서조차 구인구직에 쓰는 돈이 한해 천만 원이 넘는다.
차라리 그 돈을 직원 주고 싶은데, 줄 직원이 없다. 골골대면서 동갑내기 직원이랑 버티고 있다.
계획은 많은데, 실행할 사람이 없다. 새로운 음식을 하든, 가게를 내든 직원을 구하지 못하면 방법이 없는데, 아무리 상대적이라지만 급여를 헤드셰프 급으로 주는데 안 뽑히면 방법이 있나???
대체 사장님들 사람 어떻게 구하시는 거지.
그 문제로 연달아 붙은 문제가 새로운 메뉴.
마케팅면에서나 운영면에서나 새로운 메뉴를 한다는 것은 필수요소다.
안암을 시작한 목적 중 가장 큰 게 사실 테스트배드(Test-bed)로서의 역할인데
직원을 못 구하니 그게 불가능하다.
국밥으로 모인 손님들이 앞으로 내가 할 대부분의 음식이 요구하는 타겟층과 같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내게 생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노동력을 갈아 넣을 수가 없다.
사람이 없는 상태로 새로운 메뉴를 시작하면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의 퀄리티만 낮아질 뿐이다.
여전히 방법을 찾고 있다.
또 그 문제로 영업일 역시 5일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3. 잘된 것
예상보다 빨리 손님이 모였다.
하루 매출 평균이 예상보단 빨리 괜찮아졌고 긍정적 경험의 피드백이 많은 편이다.
기획한 요소대로 느끼고 있는 손님들이 분명하게 눈에 띄고, 공간 여기저기 구성해 둔 것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분명 있다. 어딜 가나 불평불만 많은 분들이 남기는 피드백에 잠깐 기분 나빠지기도 하지만, 10에 2-3이라도 내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게 중첩돼서 효과를 발휘할 거라 믿는다.
주변인들에게 기획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몇 번 더 오픈해 봐야 알 수 있지만, 안암의 경우 기획한 내용대로 포지셔닝되었다.
그 부분을 높게 평가한 분들의 컨설팅 의뢰도 종종 들어온다.
속된 말로 "뽀록이네"하는 소리는 안 듣고 있다는 것.
그래봐야 아마추어지만, 못 이긴 척 여기저기 소문도 내고 싶다.
브랜드를 통해 해결하고 싶었던 것들을 내 생각대로 해결해 왔다는 게 자랑스럽고, 타인에게 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다.
그 모든 것들이, 근데 그거 그만하길 잘했어요 하는 그 발렌어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거 너무 잘 알고 있고, 앞으로 안암이 발렌어스보다 더 깊은 뿌리로 내게 남아있을 거란 것 역시 너무 잘 안다.
남들에게 실패로 보이는 경험도 내겐 매우 중요한 경험이라는 그 경험이, 앞으로 몇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된다.
걱정도 많이 되지만, 잘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과가 어떻든, 누군가 나의 목적을 또렷이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닐 거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다.
4. 얻은 것
제일 큰 부분은 사람들이다.
난 이 일을 혼자 할 수 없다. 오픈을 도와준 사람들, 동병상련을 느끼는 사람들, 현재 곁에서 일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마음의 위안이 되는 사람들 전부, 어느 장소에서나 다름없지만 가끔 느끼는 외로움 역시 덕분에 버텨낸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그런 나를 호구취급 할 사람이라면 내가 더 잘되었을 때 내 곁에 없을 거다.
나는 이런 계산 저런 계산하지 않고, 나다움을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손님들.
오늘 안암 계정으로 업로드된 내용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꼈던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하는 손님들이 있다. 재방문만으로 감사한데, 그 마음 하나하나가 너무 감사하다.
나도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었으면 하는 마음, 투정 심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안암이 지속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게 세대를 거쳐 내 아이의 아이가 알고 있는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음식점이 될 순 없을까, 욕심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