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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Jul 15. 2020

코스트코 등심 고수 까나리 까르보나라

소비꾼의 집밥 02


  까나리 액젓을 벌칙용으로만 대접하던 사람들아, 오태식이 대신 까나리가 돌아왔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섬유질 염분, 이 정도면 돈 빼고 다 있다. 훌륭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액젓이 들어간 고기와 파스타 그 쿰쿰함이 얼마나 잘 이어지는지. 대부분의 음식에 소금과 간장이 하는 일을 액젓은 풍미를 더해서 해낸다. 그러니까 시킨 일의 120%를 해내서 문젠거다. 간만 맞추고 싶은데 향을 얹으니 이걸 뭐라고 하기도 뭐하고 칭찬을 하기도 뭐한 존재다. 근데 이게 의외로 잘 어울릴 때가 있다. 왜 학교 다닐 때도 있잖은가, 잘 노는데 전교 회장이랑 친하게 지내는데 그게 참 이상한데 안 이상해. 그런 거 비슷한 거다.

  가끔 고기를 굽기 전에 액젓을 발라놓을 때가 있다. 삼투현상으로 쫀쫀해진 느낌을 기대하기도 하고, 감칠맛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으며, 액젓이 열을 마주하는 순간 만들어내는 멋진 맛이 있다. 간장 같으면서도 간장과는 다른 그런. 특히 어떤 채소와 같이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을 살려주는 느낌이 든다. 동남아 음식에 들어가는 피쉬소스의 쿰쿰함이 다른 재료들을 얼마나 살려주는지, 김치 곳곳에 들어가는 액젓의 역할이 어떤지 생각해보면 얼마나 색깔있는 파트너인지 알 수 있다. 

 

이날 그렇게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수가 한 바닥 남았다.

사진은 소비꾼의 집밥 https://brunch.co.kr/@sobeggun/4에서 사용한 사진이라고 출처를 남겨본다.


  그래서 메뉴를 선정함에 기준은  
고수를 사용할 것 + 집에 있는 재료를 사용할 것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고수가 썩어 버리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그 정도 성실함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써는 정도의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하려면 파스타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파스타를 먹고 싶어 졌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진짜다. 


남은 재료로 잔반 처리 그 이상을 할 수 있어야 요리사다. 
하지만 난 요리사가 아니니까 잔반 처리로 끝나도 괜찮다.
지금 보니 파스타가 너무 생선회를 올린 무채처럼 표현된 것 같다.

재료

고수 남은 거

허여 멀 건하고 단단한 치즈

허여 멀 건하고 말랑한 버터

까나리 액젓

페투치니 건면

후추

올리브 오일

마늘

샬롯(양파 대체 가능)

계란 두 알 

코스트코 등심 https://brunch.co.kr/@sobeggun/5



조리과정(중요)

  자기는 왜 저렇게 안되냐고 물을 사람이 없으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글을 쓰기로 했으므로 쓰도록 한다. 


  고기를 꺼낸 후 액젓을 발라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옆에 두고 담소를 나눈다. 지인들이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 혼자 있을 땐 특별히 말이 없는 편이라 유튜브로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재료 준비를 하곤 한다. 기름 잔뜩 묻은 손으로 광고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유튜브 프리미엄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시리는 해결해주지 않는다.)


  마늘 대충, 샬롯 대충, 고수 섬세히 찹찹 썬다. 이건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굳이 기준을 주자면 마늘과 샬롯이 기름에서 볶일 때 크기가 다르면 어떤 놈은 타고 어떤 놈은 안 타기 때문에 크기가 비슷하면 좋고, 고수 같은 허브는 뭉개면 뭉갤수록 맛없어진다고 생각하고 섬세히 다뤄주면 본인의 식사생활에 소박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순서를 주자면 이렇다.

고기 꺼내기(까나리 바르기)

야채 및 재료 준비하기 

면 삶기 (면수 만드는 법 - 끓는 물 +소금 +기름 살짝 땡)= 남겨둔다.

고기 굽기 (알아서 굽는다) 대충 굽고 먹을 때 자기가 원했던 게 이거라고 얘기하면 된다.(중요)


  고기에 조금 쉴 시간을 주는 동안 파스타를 완성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된다.

  진짜 이렇게 끝내려고 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욕먹을 것 같아서 나머지도 적는다.


  기억하고 있겠지만 고기를 구울 때 마무리에 버터를 넣었다. 브라운 버터의 대체로 사용할 수 있는데 보통 판체타 같은 염장 고기를 사용하지만 고기는 있으므로 소기름과 버터를 섞은 것을 사용해본다. 마늘과 샬롯 썬 걸 같이 넣는다. 대다수의 기준은 골든 브라운이라는 색이지만, 골든 브라운이 뭘까 싶어 보고 있다 보면 아 저게 골든 브라운이구나 하는 순간 설거지거리만 하나 더 늘어난다. 관심 갖지 말고 그냥 넣자


  면수를 남겨뒀었다. 마늘과 양파가 색깔이 나기 시작하는 순간 까나리를 둘러준다. 양은 책임 못 진다. 느낌대로 해라. 기억해야 할 것은 농축되어 있는 친구라 일당백을 한다는 점이다. 이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소비꾼이지 사기꾼이 아니다. 기억해라. 그리고 양파와 마늘에 간이 좀 벤 거 같은 색이다 싶을 때 면수를 조금 넣고 안 타게 해 준다. 면도 넣고 안 타게 섞어준다. (왜 그거 있잖나 셰프들 티브이 나오면 막 프라이팬 앞뒤로 양옆으로 하는 거, 지금이다.) 여기서 에멀전을 살짝 만들어 줘야 되는데 무슨 말인지 1도 모를 테니 굳이 설명하자면 뭔가 물인 듯 기름인 듯하는 그거다. 그걸 진짜 왜 짜파게티 끓였을 때 물 남기는 것보다 쪼끔만 덜 남게 만들어라. 그리고 불에서 빼는 거다. 이제 불 안 쓴다.

다 왔다. 곧 당신의 것이 된다.

  그걸 아까 말한 미리 준비해둔 믹싱볼에 담는다. 아까 말했잖나. 준비해두라고.

거기에 부루쥬아처럼(이럴 때 자신이 얼마나 여유있고 고급진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 흰자를 버리고 남겨둔 노른자 두 알과 파마산 치즈를 잔뜩 넣는다. 후추는 엄청 많이 넣는다. 고수 섬세하게 썰어둔 것도 섬세하게 넣는다. 섞다 보면 저렇게 된다. 대충 올려놓고 맛있게 먹자. 


저번에 만든 피클이 생각나서 헐레벌떡 들고 나와 다시 사진을 찍었다.

포인트


  육즙이 많은 고기들은 간을 생각보다 많이 해야 싱겁지 않다. 요리사들은 음식을 할 때 간을 여러 군데 하고 맛의 순서를 생각하면서 조절한다.  고기를 사용하기로 한 이상 이름은 파스타지만 중심은 고기다. 그래서 파스타가 오래 씹어야 하는 고기 육즙의 밋밋한 간을 받쳐주는 서포터이길 바랬고, 그래서 평소의 파스타보다 간이 세길 바랬다. 그 과정에서 선택한 게 까르보나라다.


  까나리를 사용한다는 건 많은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형태일 테다. 까나리로 간을 맞추는 것은 그냥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과 차별화된 맛을 표현할 수 있다. 집에 항상 있는 재료기도 해서 여러모로 많이 사용하며, 레몬그라스 치킨을 만든 날도 까나리를 사용했다.


  까나리가 없다면 간장으로도 가능하고, 고수가 없다면 방풍나물이나 비름나물도 가능하다. 종종 해 먹는 파스타 중에 비름나물과 생선구이를 사용한 파스타도 있는데, 정말 맛있다. 정말 맛있다. 정말 맛있다. 



예상 질문 미리 대답하기


평소보다 성실히 과정을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메뉴는 무엇인가?

안 읽을 줄 알았다.


읽어보니 만드는 사진은 없고 만든 사진밖에 없다. 어떻게 된건가? 

만드는 동안 사진을 찍는 사람이 다른 일을 하고 있었어서 그렇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요리하고 있었다.


...고수가 생각보다 적다. 역시 하수인가?

... 그런 걸로 하자.


까르보나란데 크림을 안 쓴 것에 대해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그런 분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없을거다.


탄 건 아닌 것 같다.

속으로 말해라.


짠 거 아냐?

안 짠 건 아니다. 말했듯이 간이 좀 있어야 고기랑 먹을 때 느낌이 좋다. 파스타 면이 씹힐 때마다 느껴지는 짠맛이 고기랑 정말 잘 어울린다. 계란 노른자의 부드러운 맛과 고수의 향, 그리고 구워진 고기의 육즙이 파마산 치즈를 만나면 입안에서 정말 기분 좋은 맛이 계속 난다. 다양한 감칠맛의 연속인 건데 먹어보기 전엔 상상하기 힘들다.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짜긴 짠 모양이다.

안 짠 건 아니다. 말했듯이 간이 좀 있어야 고기랑 먹을 때 느낌이 좋다. 파스타 면이 씹힐 때마다 느껴지는 짠맛이 고기랑 정말 잘 어울린다. 계란 노른자의 부드러운 맛과 고수의 향, 그리고 구워진 고기의 육즙이 파마산 치즈를 만나면 입안에서 정말 기분 좋은 맛이 계속 난다. 다양한 감칠맛의 연속인 건데 먹어보기 전엔 상상하기 힘들다.


내 상상력을 무시했다. 사과해라

사과한다.


근데 저거 저렇게 고기를 곱게 올려놓으면 어떻게 먹나? 

너무 사진 중심의 음식이 아닌가?

당신 변했어라고 말하고 있는 소고기. 

내려놓고 먹어도 사진을 찍으면 사진 중심 음식이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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