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2023.
좀 더 어릴 땐 연말을 맞이하는 느낌이 달랐다.
커다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엔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들기도 했으니까.
그때마다 난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모자라 보이기만 했다.
지금이야 그 쓸모없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꼰대가 되었지만, 되어보니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질수록 한 해가 지나가는 게 큰 의미로 와닿진 않는다.
의미를 담자면 후회할 짓을 남기진 않았는지, 복기해 보는 명분 정도이다.
목표한 시간 안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해서인지 목표에 다다른 게 22년이든, 23년이든 포기하지 않고 진행한다는 게 중요하다. 이젠 계절이 워낙 희한해 4계를 나누는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을 올해의 기억이 몇 개 있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오늘시간으로 2540일을 함께한 여자친구가 있다.
우리는 한 칸짜리 원룸에서 시작해, 4번의 이사를 했다. 두 번은 내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해야 했던 이사였다. 발렌어스를 실패하고, 안암을 시작하기 위해 보증금을 뺐다.
불확실한 미래만 중첩되어 좀 더 안정적일 때 결혼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몇 년 하다 보니, 안정적인 삶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중요한 건 겪을 수밖에 없는 위기들을 잘 헤쳐나가는 것,
그리고 가끔 실패해도 괜찮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내가 불확실할 때엔, 내 옆에 있는 이 친구가 나를 믿는 것을 믿어보기도 한다.
어쩐지 우리는 어떤 힘든 일도 같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고, 누군가 책임을 지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이겨내는 사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더 큰 확신을 했다.
나는 미쉐린이라는 단어를 잘 안 쓴다.
내가 이 경력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슐랭이었고, 그 미슐랭이라는 단어는 내 직업에서 상징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게 꿈이었지, 받을 생각은 까마득한 먼 미라니 감히 꿔보지도 못하기도 했다. 경력을 더 채울수록 그러했다. 음식 그 자체만으로 축복을 받기 어려운 것이 이 업이니까.
매 년 경력을 쌓으면서 미슐랭에 대한 경외가 커져갔다. 그 미슐랭이라는 것은 아무나 받진 못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중요한 단어를 외래어 표기방식 때문에 함부로 바꿀 순 없다.
그렇기에 쉽게 목표라고 말하지 못한 그 수많은 목표 중 미슐랭을 2024 안암에서 이뤘다.
뭔진 모르겠지만 빕구르망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던 대로, 대중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꿈을 이뤄가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번 우리의 메시지를 응원받은 기분이라, 의미가 깊다.
전 세계의 나 같은 사람이 서울에 오면 들를지도 모르는 그런 음식점이 되었을까?
이제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건 우리 몫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
안암에서 이제 직원의 지분은 그만큼이나 늘어났다.
읽을 게 없던 이력서만 주야장천, 거기에 우리 가게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뻔한 사람들만 한 달에 두통 올까 말까 했던 이력서에, 차곡차곡 자기소개서 길이만큼이나 욕심이 가득한 직원들이 채워져 간다.
미슐랭이 내게 해준 가장 큰 것은 직원이다.
올해 9월을 기점으로 좋은 직원들을 많이 뽑았다.
원래 있던 좋은 사람들과, 또 좋은 직원들을 뽑았고, 이곳에서 훌륭히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다.
2년 넘게 못 뽑던 직원을 뽑은 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급여조건, 미슐랭, 근무조건 등이 있겠지.
선순환이 생겼고, 그들의 노동에 내 딴엔 적합한 급여를 주고,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해준다.
차치하고, 그들이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정말 설레고 기분 좋다.
힘들고, 스트레스받으며, 방법을 찾는데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방법을 찾는 게 정말 훌륭하다.
나는 이곳에 오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참 실망을 많이 했고, 비참해지는 상황도 많이 겪었다.
내 노력에 회의적이던 사람들의 모두를 데려갈 수 없다는 비아냥을 듣거나 버리고 가도 되지 않냐는 그 모든 말에 이제야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바보들아, 사람한테 기대하는 건 잘못된 게 아냐. 언젠간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난 오롯이 그 친구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나눠주기 위해서 그 힘든 사람들을 만났던 거야.
난 그들을 배제하지도 않았고, 회피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귀담아들을 수 있는 거라고 바보들아.
난 나보다 어리고, 내가 경험한 과정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는 친구들을 만난 게 정말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더 늘려나가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 친구들은 훌쩍 성장해 떠나버릴 테다.
뭐, 떠나도 좋다. 이 업장이 본인에게 도움만 되었다면, 충분하다.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썼지만, 사실 올 7월까지만 해도 적자가 심해 손이 많이 저렸다.
모아둔 돈을 다 쓰고, 월급 못줄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으기도 했다.
경기 침체에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정말 쉽지 않은 데다, 물가까지 올라버리니 버틸 방법이 없던 때도 있었다.
그땐 겁이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만 안 되는 건지 다른 상권을 여러 번 확인을 하기도 했다.
힘내기 힘든데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보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더랬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단단해지고, 그 방법에 디테일이 생기고, 목적의식과 목표가 강해지기도 했지만, 정말 힘든 시기가 몇 개월 지속되었다.
그냥 툭 던지고 가려고 한다.
2024년의 경기는 더 안 좋단다. 그럼에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
그러므로 2023년의 기분 좋음만 들고, 힘든 시기에 배운 것만 들고, 앞으로 겪게 될 새로운 힘듬에 심드렁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나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동료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