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꾼의 집밥 07
점심은 간결하게 먹는 게 좋겠다.
고소한 게 땡긴다 싶어 선택한 메뉴.
코스트코 소고기는 아직도 한참 남아있다.
쉬는 날마다 고기를 잔뜩 먹는 입장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코스트코는 내 친구.
얼마 전에 쭈꾸미를 사다가 실파에 싸서 먹었다.
필연적으로 흰 부분 위주로 소비한 실파는 파란 부분만 잔뜩 남아 있었고,
나는 냉장고 관리자에게 빠른 소비를 요구받았다. (나다.)
최근 대부분의 야채들이 수해를 입은 데다 여름엔 원하는 향이나 맛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 구한 실파는 굉장히 향이 좋고 신선한 편이다.
그래서 가급적 향을 살릴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오늘의 주 재료는 쌈장 + 들기름 + 실파 + 버섯이다.
목이버섯
표고버섯
실파
쌈장
들기름
소고기
쌀
굳이 말하자면 자기 역할이 다 있다.
쌈장- 짠맛
쌀, 쌈장-단맛
쌈장-고소한 맛
표고, 목이 -식감
실파, 표고 -향
들기름 -고소한 향
소고기- 고기
나는 놀고먹는 역할만 하고 싶다.
그냥 한번 말해봤다.
밥은 어차피 밥솥이 해준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끊고 웨이브를 구독했다.
소리로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엄청 많다.
놀면 뭐하니, 런닝맨,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등, 라디오를 대신할 콘텐츠가 잔뜩 있어 밥 짓기가 수월하다.
넷플릭스는 소리로만 소비 못하냐고?
물론 가능하지.
들기름과 쌈장, 파를 넣고 예쁜 색이 나올 때까지 비벼준다.
소고기에 육즙이 많다는 점을 유념하면서 간을 맞춰야 한다.
보통 맛있어 보이는 색이면 자기 간에 맞는다.
소고기는 가급적 기름 없이 구워본다. 느끼한 맛이 덜 하고 겉이 더 메마른 바삭한 맛이 나는데 그게 참 잘 어울린다. 입에 오래 남지 않는 느낌이다.
고기의 익힘 정도는 굳이 설명하자면 타다끼 라 불리는 것처럼 겉만 바싹 익히는 정도가 좋은 것 같다.
실파는 비빌 때 섞고 나중에 한번 더 올려준다. 생생한 파가 씹힐 때 미세한 아삭함이 심심할 수 있는 맛을 깔끔하게 만들어준다.( 생을 두 번이나 쓴 덴 이유가 있는 거다.)
버섯밥을 지어보니 쌀에 버섯향이 가득하고, 버섯은 쫄깃한 느낌이 강해져서 정말 좋다.
밥을 지을 때 들기름을 살짝 둘러줬더니 밥이 더 윤기 있다.
고기 구워 비빔밥을 먹는다는 개념이라 사실 특별할 것은 없다.
필라프처럼 해 먹으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손 많이 가는 행동은 되도록 멀리하려고 하다 보니 이런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다양한 식감과 향을 한 번에 느끼면서도 기름기가 적기에 먹고 나서 부담이 없고, 기분이 좋게 끝난다.
손쉽게 할 수 있어 자주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성실한 순간이 로또 사러가는 상상을 할때다.
물론 사러가는 행동력 까진 갖추지 못했다.
성실한 상상력과 게으른 행동력을 지닌 게 바로 나다.
볼 수 있다. 나도 호주에서 2년 정도 지내다 온 사람이다.
아, 참고로 호주는 영어를 사용한다. 알고 있나?
김준현 씨가 식사하는 모습은 문화재라 표현해도 아깝지가 않다.
그렇다기보단 까나리- 김치 담글 때, 쌈장- 고기 먹을 때 뭐 이런 고정관념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집에 있는 양념들 중 쌈장은 고소하고 달짝지근한데 맛이 강하지 않아서 다른 것들과 어울리는데 궁합이 좋다.
까나리도 저번에 설명했지만 간이 있고 독립적인 향이 있지만 단맛과 궁합이 좋고 감칠맛이 세다.
이렇게 좋은 양념을 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맞다. 요리사 출신들에겐 많은 병이 따라다니지만
그중 녹색병과 식감병은 대부분의 요리사가 가지고 있는 병이다.
녹색병은 풀떼기들을 마지막에 피니싱으로 얹어줘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병이고,
식감병은 1가지 식감으로 포인트를 잡는 경우를 제외하고
2-3가지 이상의 식감이 한 디쉬에서 느껴지게 설계하는 병이다.
둘 다 그냥 병이다.
취사병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냉장고 관리자의 요구였다(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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