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꾼의 집밥 14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마요네즈에 구운 오징어를 찍어 먹어 봤다면 끝없는 땡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오징어 학살자가 되어 버린 자신을 보면서 이게 다 마요네즈 탓이라고 말해본 적 있을 거다.
근데 이거, 파스타로 만들어도 맛있겠는데?
자주 먹기엔 비싸고, 그냥 오징어보다 작은 크기에 특별할 것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름에 갑이 들어간 덴 이유가 있다.
그냥 오징어와는 다른 아삭함이 있고, 뭔지 모를 꾸덕함도 있다.
오징어 먹물 색소와 갑오징어를 사용해 구운 오징어보다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재료를 손질하는 것의 첫 번째 기준은 물론 조리 계획에 맞는 크기로 손질하는 것인데,
계획을 세울 때 중요한 것은 어떤 면을 사용하는가 일 테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길고 얇은 면을 쓸 땐 입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맞춰 모양을 잡기도 하고,
또 사용하는 기물에 따라, 아니면 면과 같이 먹을 수 있게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갑오징어를 사용하기로 한 이유가 식감과 두께에 있으므로, 면을 씹을 때 어우러지도록 전처리한다. 양파 또한 오징어와 비슷한 크기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모티브가 구운 오징어와 청양고추 마요네즈였으므로 구운 맛이 나야 한다.
오징어만큼 구운 향이 잘 어울리는 것을 본 적이 없으므로 구워본다.
구울 땐 불향을 위해 올리브 오일에 버무린다.
확실히 나는 만드는 것보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맛있게 만드는 법을 내가 알고 있으니 내가 해 먹는 것일 뿐이다.
사실은 만드는 건 괜찮은데 설거지가 싫다.
면 삶고, 야채 볶고, 합치면 된다.
차 후 과정이야 불 위에서 한번 볶아 나오는 파스타는 다 똑같다.
단, 먹물이 간이 센 편이라 일반 건면 삶을 때만큼 면수 간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조리과정이 화려해야 맛있는 음식들이 있지만, 파스타는 촌스럽고 단순할수록 맛있다.
딜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허브는 사용하고 싶은 대로 사용하자. 고수도 괜찮다.
파스타 면의 종류에 따라 갑오징어를 다르게 썰면 좋다. 면의 모양에 비슷하면 식감도, 조리시간도, 음식의 담음새도 정리가 된다. 입 안에서 얼마나 같이 어우러지는지도 생각해보자.
먹물은 간이 센 편이므로 무턱대고 넣으면 음식을 끝까지 먹기가 힘들다.
이 파스타는 소스가 에멀전 되면 맛있다. 수분과 유분이 섞이는 중간의 형태가 있는데, 그 타이밍을 잡는 게 사실 전문가가 할 일이기도 하다. 올리브 오일과 먹물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면수(면을 삶은 물)이나 따로 끓여놓은 육수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자.
마요네즈는 따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청양고추 마요네즈다.
맛있는 녀석들에서 한 때 유민상 씨가 자주 만들던 그건데, 거기서 간장을 빼고 만든다.
먹물이 역할을 해줄 예정이기 때문이다.
올리브유를 좋은 것을 쓸 수 있다면 좋다. 이 음식처럼 1차원적인 음식엔 향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입안을 스쳐 지나가는듯한 파릇한 향이 도움이 된다.
기왕이면 갑오징어가 좋다고 생각했다. 갑오징어는 치아를 밀어내는듯한 탄력이 있다.
오독오독하는 느낌도 먹물과 같이 했을 때 별미다. 그리고 갑오징어는 갑옷이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물론 구운 오징어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것만큼 쉽진 않다. 그런데 또 뭘 해 먹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치곤 되게 쉽다. 혼자 먹을 땐 구운 오징어 먹고, 같이 먹을 때 파스타 해 먹으면 된다. 썰어서 볶으면 끝이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엄지손가락을 닮았다고 들었다.
찾아보면 있다. 리소토, 빠에야 등도 해 먹고, 빵 만들 때 쓰기도 한다.
또 먹물 색소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재미있는 일도 많다.
석탄 씹어먹은 사람처럼 입 안이 새카매지는데, 소개팅할 때 참 좋다. 추천한다.
잇몸에 고춧가루? 일도 아니다.
말 그대로의 맛이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거기에 탄수화물과 먹물의 짠듯한 감칠맛이 맛을 꽉꽉 채워준다. 근근이 느껴지는 청양고추는 느끼할까 싶을 때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마요네즈가 또 맛을 더 진하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올리브 오일을 좋은 것을 쓰면 더 확실하게 맛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