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
글쓰기를 시작하고자 하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얀 심연이
나를 굳게 만든다.
모든 글쓰기는 나에게 처음이다.
무엇에 대해 아는지
무엇에 대해 모르는지
확실치 않은 그 사이에서
글쓰기는 시작된다.
글쓰기는 죽음을 닮았다.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특정 공간에 박제시킨다.
박제된 것들은 나무껍질처럼 풍화되고
나로부터 뜯기고 떨어져 나간다.
나와 하나였던 것들이
문자로 하나씩 분리되어가면서
하얀 공백 위에 새로 포개어지며
또 다른 시선들로 나를 바라본다.
나를 닮았지만 내가 아닌 것들을
뒤로 남기고 쫓기면서
나의 글은 깜빡임의 지평선을
끊임없이 내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