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30주년 추모일을 맞이하며
화요일 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30주년이 되는 날.
내가 Zoom에 접속하기를
늦게까지 기다리다가 잠든 동생을 빼고
부모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소소하게
Zoom으로 할아버지 추모시간을 가졌다.
지난 몇십 년간 할아버지 추모일은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작은아버지네 식구와 큰고모네, 작은 고모네,
그리고 막내 작은 할아버지네까지
설날과 추석과 마찬가지로 그날은 교회를 안 나가는 가족들도
다 같이 모여서 먼지 쌓인 성경을 펼쳐 읽고 찬송가를 불렀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사촌동생들도
그날은 다 같이 모여서 할아버지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2010년도에 들어와서 점점 모임이 간소화되고
각자 가족 단위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추모예배뿐만 아니라 명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추모일에는 이미 별로 모이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우리 가족들만 조촐하게 추모예배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코로나가 덮쳤다.
올해 역시 우리 가족끼리만 모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따로 독립한 나를 배려해서
Zoom으로 추모시간을 갖기로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지병으로 자주 병상에 누워계셨다.
그런지 몰라도 남아있는 어릴 적 단편들을 아무리 끄집어봐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 병상에 누워계신 모습만 떠오른다
오늘은 과감하게 예배형식을 생략하고
각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좋은 염원과 복을 빌어 드리기로 했다.
기억이 상대적으로 없는 나를 대신해서
먼저 부모님께서 당신들의 기억을 공유해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엄격하셨지만 세상 물질에 욕심 없으셨던
당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느끼셨고
어머니께서는
시아버지이자 환자였던 대상을 대하는 것이 생소하고 어려웠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죄송한 마음을 느끼셨다.
나도 할아버지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을 공유하는 찰나
지난 몇십 년간의 전통을 이어오는 날이자
형식에서 탈피했던 오늘 자리 덕분인지
전과는 다르게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담담하게
할아버지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다.
비록 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성씨와 유전자 일부를 물려주신 이 분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다.
아버지께 가끔 들어왔던
아버지가 기억하시는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와 만나시기 전, 그 이전에 어떠셨는지를 여쭤보았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워낙 엄격하셨던 분이라서
자세히 여쭤볼 기회가 없으셨다고 한다.
다만 할아버지께서 1924년생이시고
해방 전에는 일본군에 징집당하셨고
해방 후에는 국군에 가담하셨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짧고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들었는데도
몇십 년의 시간을 초월한 우리 민족 역사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정말 나는 이렇게도 할아버지,
내 뿌리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만큼 그분을 위해 진심으로 복을 빌어드린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드리지 않고 추모예배로 대신해왔고
그마저도 지난 몇십 년간
진심으로 추모를 했던 적이 있었는지
계속 반문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위해
복과 좋은 기운을 염원하고 보내드리고
Zoom 원격 추모를 마쳤다.
그리고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가시지 않아
따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시간을
혼자서 다시 가졌다.
비록 많은 기억은 없지만
그분께서 병상에서 정신이 혼미하셨던 기간에도
나의 존재를 아셨다는 것
그리고 비록 작은 아기였을 때라서
내가 따로 해드린 것은 없지만
지금에라도 손주로서 내가 뭔가 해드릴 수 있다면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떠올리고
할아버지를 위해서 좋은 염원과 기운을 보내드리고
복을 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적막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를 위한 진심이 담긴 추모를 했다.
그래서인지 추모를 마치고 나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떤 울림이 느껴졌다.
돌아가시고 30년이 지나서야
뭔가 효도다운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미묘한 울림이 잔잔하게 남아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