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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Jun 16. 2021

치즈

 치즈를 19살 때 처음 먹어봤다. 그것도 치즈돈가스를 먹으며. 심지어 치즈돈가스도 19살 때 처음 먹어봤다.

 

 시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나를 시내로 데려가 치즈돈가스를 먹도록 기회를 준 사람은, 부산에서 전학 온 영주였다. 영주는 부산에서 언니와 둘이 자취하며 학교를 다니던 아이였는데 여러 이유로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다시 내려왔다. 그것도 고3 때.


 긴 머리를 거의 정수리에 묶고 나타난 영주는 얼굴이 유난히 하얬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는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얼굴이 황색이거나 황갈색이었고 몇몇 남자아이들은 눈만 하얗게 보일 정도로 시커맸다. 그런데 영주가 전학을 오니 모두들 눈길이 갔고, 몇몇 여자 아이들은 은근 질투도 했다.


 영주는 조금 통통하고 키가 작았지만 누가 봐도 세련되고 예쁜 얼굴이었다. 소극적인 성격인 나는 영주에게 자꾸 눈이 갔지만 먼저 말을 걸진 않았다. 사람을 보면 딱 알 수 있었다. 나랑 같은 부류인지, 다른 부류인지.


 영주의 외모로만 봐서는 나와 전혀 다른 부류였다. 나는 큼지막한 교복을 무릎 아래로 입었고 머리스타일 또한 귀 밑 3센티였다. 그러나 영주는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하얀 얼굴, 긴 머리로 가까이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영주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데 깜짝 놀랐다.
 외모와 달리 걸걸한 목소리 톤과 알아듣기 힘든 부산 억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는귀를 먹었는지 영주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해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대충 '어, 어, 그래'하고 얼버무렸는데 그래도 대화가 통했는지 같이 웃었다. 알고 보니 영주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고 걸걸한 목소리 톤만큼이나 재미있는 상황을 즐기는 아이였다. 나 역시 처음에는 소극적이지만 친해지면 스스로 망가지는 개그도 서슴지 않는 여고생이었던 지라 영주와 점점 친해졌다.


 외모로는 같은 부류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보니 같은 부류였던 것이다. 웃기 좋아하고 개그를 수시로 던지는.


 점점 영주와 친해진 나는 대전 시내를 함께 가게 되었다. 영주는 어느새 대전 시내까지 섭렵했는지 대전 은행동에 오면 꼭 가야 하는 돈가스집이 있다며 나를 '아저씨 돈가스'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메뉴를 고르는데, 안심 돈가스, 등심 돈가스, 치즈돈가스, 쫄면, 오므라이스 등 여러 메뉴가 있어 무척 망설여졌다. 그때 영주가

 

"치즈 돈가스 먹어봤어?"
"아니"
"그럼 먹어봐. 나도 치즈돈가스 좋아해"
"그래"


 배려 가득한 목소리지만 결단력이 좋았던 영주는 나의 메뉴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주었다. 그리고 시내까지 왔으니 노래방도 가보자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드디어 돈가스가 나왔다.
 얇게 썬 양배추와 두툼한 치즈돈가스, 갈색 소스까지.
 냄새는 왜 또 그렇게 좋은 건지. 순식간에 입맛이 돌았다.


 그리고 얼른 썰어 한 입 먹어보는데, 촌스러운 나는 치즈돈가스의 식감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껌처럼 질긴 느낌인데 씹히기는 하고, 우유를 먹는 느낌인 것 같은데 고기 맛도 나는 조금 이상한 맛이었던 것이다.


 돈이 아까워 결국 다 먹기는 했는데 이후 치즈돈가스를 먹자는 말이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불어 치즈도 싫어했다. 치즈돈가스를 통해 처음으로 치즈를 먹었는데, 치즈의 식감이 너무나 이상하고 싫었던 것이다.


 30년이 훌쩍 지난 요즘의 나는 매일 치즈 한 장씩을 먹는다. 칼슘이 많아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는 말 때문이다. 먹을 때마다 영주와 함께 치즈돈가스를 먹던 순간이 떠오른다. 뒤늦게 결혼해 이제야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영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리고 치즈돈가스를 먹던 그 순간을 이야기하며 옛 추억에 젖어들었다.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은 축복이다. 알면서도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내 삶에만 집중하여 사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심한 편인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하지 않는다. 혹 생각이 나도 '잘 지내겠지'하고 만다. 이렇게 추억이 떠올라 다시 수다 떨고 싶어 져야 비로소 먼저 연락을 한다. 옛 친구들, 옛 인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추억이 자꾸 떠올랐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치즈를 먹으며 함께 치즈돈가스 먹던 영주가 떠올랐던 것처럼.

 그래야 지인들에게 연락하게 될 것 같다. 추억은 참 감사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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