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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Jun 14. 2021

김치

얼마 전, 엄마가 담가 준 배추김치가 알싸하게 익었다. 큼직하게 자른 배추김치는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김치 없이 밥을 못 먹으면 늙은 거라고 하던데, 요즘 김치 없이는 밥이 넘어가질 않으니, 늙긴 늙었나 보다. 예전에는 '김치 담갔는데 줄까?' 하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먼저 전화해 '김장 김치랑 파김치 좀 있어?'하고 묻는다. 김치찌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식구들 탓도 있지만, 나 역시 김치 없이는 밥상이 허전하다.


 세월이 갔다. 김치보다는 피클, 밥보다는 파스타, 떡보다는 빵을 좋아하던 나는 저기 머나먼 '세월 속'으로 갔다. 느끼한 크림 파스타보다는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어야 속이 개운하니 말이다. 같이 사는 '내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소시지 없이는 밥을 못 먹던 양반이 이제는 '장모님 표 파김치'가 없으면 허전해한다.


 "엄마, 김서방이 파김치 좀 담가달래."

 라고 하면, 엄마는 무척이나 반가운 목소리로

 "그래, 지금 당장 먹을 것 조금 있으니 갖다 줄게, 장날에 파좀 사다가 또 담가야겠구먼."

 하신다.


 엄마는 '김치 부심'이 있다. 식당을 가면 그 집 김치 먼저 맛본다. 그리고 맛이 없으면

 "에휴, 김치가 중국산이네. 집에 있는 열무김치랑 밥 비벼 먹는 게 훨씬 좋겠다."

 하며, 오래간만에 맛있는 밥 사드리겠다고 나선 자식들 삐죽거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김치 부심'을 인정하며, 그러려니 한다.

 정말, 엄마가 만든 김치는 생각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접 담가먹을 나이를 훨씬 지났지만, 그래도 엄마 김치를 가져다 먹는 것은 맛이 있는 것은 물론, 엄마가 그러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언젠가 진심이 반쯤 담긴 말투로,


"나도 김치 담는 연습  좀 해야겠어. 엄마도 우리 김치 담가주느라 힘들 텐데."

 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엄마는,

"괜히 비싼 재료 사다가 망치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라. 내가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해줄 테니."

 하셨다. 그때 알았다. 엄마는 마흔이 넘은 딸이지만 아직은 '김치 독립'하길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40년 넘게 엄마 김치를 먹고 있는 철없는 딸인 나는, 생각한다.

 '엄마 김치, 오래오래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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