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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Jul 07. 2021

나는 누구인가?

 문득문득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누구인데 이 집에서 살고 있고, 누구인데 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고, 누구인데 사람들이 나를 '00아'라고 부르는지.


 언제부터 그들은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이름을, 내 존재를 불러줬을까? 나를 처음 만난 날,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그 어떤 이름으로?


 나이가 먹어가며 자꾸 내 존재를 돌아보게 된다. 그냥 바쁜 오늘을 살고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나'를 자꾸 살피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길래, 지금 이곳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갱년기가 벌써 온 것이냐고 한다. 웃으며 넘겼지만, 40대 초반에 갱년기가 벌써 와버리면 너무나 슬플 것 같아 극구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리고 자꾸만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별 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웃으며 다독여본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기 바빴던 20대 때는 40살이 되면 몸도 마음도 늙어 허구한 날 소파에 누워 tv만 볼 것이라 상상했더랬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된다면 참 편하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저녁부터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누르다 보면 스르륵 잠이 들 것이고, 새벽녘쯤 지지직거리는 tv를 끄고 얼른 침대에 몸을 누여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드는 일상 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20대의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많았던 타입이라, 40대쯤 되면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위치가 제법 자리를 잡아 편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러나 40대 초반의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제법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60대쯤 되면, 정말 편하겠다고.
 자식들이 다 커서 분가할 테니 신경 쓸 것도 훨씬 줄어들 것이고, 모아 놓은 돈으로 삼 시 세끼 뭘 먹을까 생각만 하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그 한 가지는 늘 나를 괴롭힐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를 살아도 나라는 인간의 끊임없는 자아성찰은 지속될 것임을 안다. 인간은 쉽게 변할 리 없으니까. 나라는 사람은 늘 미리 걱정하고 자신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조금 더 성장하길 바라는 욕심이 끝이 없으니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결국 자신에 대한 자아성찰 중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답은 매우 많지만, 모두 석연치 않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기대치를 채울 만한 현실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못한다. 60대에도 70대에도 그럴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희망은 자의로 놓을 생각이 없다. 타의로도 놓지 않을 계획이다. 이 희망을 놓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철학적인 물음은, 나를 지탱하는 아주 건강한 질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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