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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Oct 29. 2019

우아한 백조처럼 끊임없이 물질하기

스물일곱, 겨울에 결혼을 하고 스물여덟 가을에 아이를 낳았다. 

서울에 가서 방송작가로 살 것인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 것인지를 선택하던 날 나는 꽤 짧은 시간에 결혼을 택했다. 스물일곱의 나는 조금 현실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기분파'였는지도. 


 결혼을 택할 때의 내 심정은,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나 결혼을 해야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잠깐만요. 나 꿈 좀 이루고 나서 그때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게요.'라고 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일곱의 나는 알고 있었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특히나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면이 있었다. 직업이나 물건은 얼마든 선택했다가 포기해도 되지만, '사람'은 절대 내 마음대로 가졌다가 버릴 수 없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를 사귈 때도 그 친구가 먼저 나를 버릴 때까지 나는 절대 그 친구를 버리지 않았다. 차라리 당해주는 편이 낫지, 내가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는 잠을 못 자는 타입이었다. 오죽하면 스물다섯까지 연애 한 번 하지 못했다. 나 좋다는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도저히 연애감정이 생기지 않아 한 달만 만나보자고 하고 한 달 뒤 이별을 고했다. 나는 그 한 달을 연애로 치지 않는다. 


 어쨌든, 스물일곱에 만난 이 사람(남편)과는 연애감정이 1년 넘게 갔고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 사람에 대하여 특히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일에 인색한 내게, 1년 동안이나 연애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원하던 방송작가의 길을 버리고 결혼을 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참 순수했다. 아니, 조금 바보였나?


 스물여덟에 아이를 낳고, 아이만 키웠다. 결혼도 처음이고, 육아도 처음인 나는 모든 게 스펙터클했다. 아이가 아프면 안절부절못하며 보리차를 끓이고 흰 죽을 끓였다. 아이가 열이 펄펄 나는데, 엄마인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보리차도, 흰 죽도 먹지 않았다. 오로지 해열제만 필요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보리차를 끓이고 흰 죽을 끓였다. 그때, 남편이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누굴 위해서 보리차를 끓이고 흰 죽을 끓이는 거야?"


 정신이 바짝 났다. 이후로 나는 해열제만 준비한다.
 이처럼, 나는 사람 앞에서 조금 많이 서투르다. 그러니 첫 아이를 키울 때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살았나 모른다. 아이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줬다. 심지어 아이를 위해 못하던 운전도 하고, 둘째도 낳았다.(동생을 낳아달라고 해서.)
 
 일을 해야 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때, 헝그리 정신이 발동했던 것 같다. 남편이 열심히 직장을 다녔지만, 요즘 세상에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서 맞이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정답은 프리랜서였다. 그것도 재택으로 일하는 프리랜서.
 그래서 아무리 돈을 조금 줘도 교정교열 일을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돈을 받아도 과자값이라도 벌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일을 확보하는 방법은 매우 원초적이다. 매일, 잡코리아, 인크루트, 사람인, 워크넷 같은 사이트를 들어가 재택으로 가능한 글 쓰는 일을 검색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 카페를 통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수시로 들어가 일을 찾았다. 그렇게 한지 벌써 12년이다. 아마도 나는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이 패턴을 유지할 것 같다. 때때로 내가 선택한 인생에 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아무 일도 내게 들어오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평생직장이 어디 있나? 그 날이 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오늘 그리고 지금 나는 행복해야만 하니까. 미리 걱정을 앞당기고 싶지 않다.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는 백조가 사실은 물속에서 쉬지 않고 물질을 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다행히도 내 체질에 맞는다. 아니, 그 체질에 익숙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물질을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나만, 당신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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