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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Oct 22. 2019

"나는 너를 믿는다"

 단, 한 사람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단, 한 사람만 그를 믿어주면 그 사람은 절대 죽거나 표류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야기 치료' 수업시간, 선생님은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상담소를 찾는다고 했다. 마음에 상처가 많고 우울한 사람들이 상담소에 와서 하는 공통된 말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이곳에 왔습니다.'란다.


 특히, 가족에게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그나마 친구가 가장 편한데, 이야기를 다 들어준 뒤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힘내!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관념적인 이야기만 해주면, 그 또한 위로가 되지 않는단다.


 '그럼, 도대체 그 힘들어하는 자를 위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


 우리는 종종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하거나 아무 말이나 쏟아낸다. 물론, 그 아무 말이라는 것은 분명 상대방을 위로해주려고 한 말인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뜻한다. 그중, 최악은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이다. 이런 경우, 옛 청소년 드라마에서는 '나다운 게 뭔데?'로 응수할 텐데, 요즘은 쓴웃음 지으며 '집에나 가자'고 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나처럼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당황스럽다. 어떤 때는,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가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좋은 말을 더 해주려다 지루한 상황으로 가기도 한다.
 
 '이야기 치료'선생님이 답을 알려주셨다. 힘들어하는 상대방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특별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어깨를 살짝 토닥여주란다. 따뜻한 눈빛과 함께.
 그것이면 충분하단다. 따뜻한 눈빛과 애정 어린 토닥임으로,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더, 많이 쏟아낸다면 다 들어준다. 따뜻하게. 진심으로.


 다 듣고 난 뒤, 해야 할 말이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열두 살이 된 첫째는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오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야구 학원에서 자신보다 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감이 꺾인 모양이다. 누군가 물으면 '야구선수가 꿈'이라고 말하던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와 물었다.


 "엄마, 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요?"


 당황되었다.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1군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 그 치열하고 힘든 과정 속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하는지.


 대한민국 평범한 엄마인 나는, 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고 말해주었다.


 "네가 정말 야구선수가 되고 싶고, 야구선수로 살고 싶다면 도전해야지. 될지 안될지를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봐야 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있을 거야."


 아이는, 며칠 후 내 곁에 다가와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엄마, 야구선수 안 할래요. 저는 영어를 잘하니까 야구 용병 선수들 통역해주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휴, 갑자기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 꿈을 위해, 이 아이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노력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것은,  이 아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엄마는 너를 믿어. 네가 야구선수의 꿈을 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꼭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거야."


 만약, 내가 이 말을 해주었다면 아이는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정말 박찬호처럼, 추신수처럼, 류현진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중요한 '때'를 포착해주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말과 눈빛, 행동에 더 신중해지고 있는 것 같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만약 나의 부모가 '글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나의 꿈을 믿어주고 응원해주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훌륭한 상태였을까?


 인생은 물음표다. 알 수 없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모든 상황이 그러하다. 다만, 순간마다 상대에게 집중하고 진심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상대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될 수 있기에.



 "엄마는 너를 믿는다. 네가 바라보고 있는 그 꿈을 꼭 이루어낼 것을"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 꿈을 꼭 이루어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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