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리 Oct 17. 2019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



 인간은 후회를 잘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좋아도 후회, 나빠도 후회한다. 좋은데 후회하는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이다. 다른 편을 선택했다면 혹시 결과가 나빴더라도 마음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에 미숙하다. 현재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더 잘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부족하다고 징징댄다. 나 역시 그러하다. 


 스물일곱 살,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결혼을 할 것인가. 꿈을 찾아 서울로 갈 것인가. 
 당시,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는 대전에 신혼을 시작할 집이 있었고 직장 또한 대전이었다. 때문에 혹, 내가 아닌 그 누구와 결혼을 해도 대전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는 그 시점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과감하게 차단하거나, 과감하게 꿈을 선택하거나. 당시, 나의 꿈은 공중파 구성작가였다. 대전에서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했으나 지역 방송국 구성작가는 내 마음을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에 가서 어떻게든 공중파 구성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꿈이었다. 약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이 있었다. 그 돈이면 서울에서 작은 원룸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 돈을 결혼자금으로 썼다. 남자 친구를 사랑해서 헤어질 수 없었던 것이 80퍼센트, 혈혈단신 서울에 가서 성공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 20퍼센트였다. (남편! 80퍼센트 이상이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였어.)


 남자 친구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 과연,  잘한 선택이었을까? 그 대답은 수시로 변한다. 두 아들과 남편을 바라보면 잘한 선택, 나만 바라보면 잘못한 선택. 지금의 내가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사람의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면 그리 잘한 선택은 아니었다. 꼭 당장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남자 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으면 경력도 확실히 다졌을 것이다. 또, 정말 결혼할 운명이었다면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났더라도 결혼을 했을 것이다. 두 아들 또한 내 자식이 될 운명이었다면 조금 늦더라도 내 자식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아이들이 학교 갔을 때 재택으로 교정 업무를 하고, 유치원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서 함께 모래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챙겨준다. 참 평범하지만 참 쉽지 않은 삶이다. 욕심이 많았던 것일까?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재택근무로 그것도 프리랜서로 일하겠다는 다짐을 이어가기에는 물에 떠 있는 백조처럼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야 한다. (끊임없이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스물일곱의 결혼이 그리 잘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했던 꿈을 확실히 이루지 못하고 너무 일찍 엄마의 삶으로 들어서 희생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다 보니, 나는 늘 힘들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 남들 보기에 바빠 보이는데 멋진 명함 하나 없다. 내가 말하는 명함이라는 것은, 꼭 종이 명함을 만들지 않더라도 무슨 기업의 과장이라던가, 무슨 방송국의 작가라던가, 무슨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라던가 하는 명칭을 뜻한다.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가정주부'라고 한다. 실제로 내 직업이 가정주부이기도 하고,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들이 매우 폭넓어지기 때문이다. 한 때는 '책 편집하는 일 해요.', '연구원 연구 성과집 교정일 해요.'라고 한 적도 있었다. 조금 멋진 말로는 편집자, 에디터라고 해도 좋을 텐데 나는 꼭 그렇게 풀어서 말한다. 어차피, '편집자'라고 해도 '그게 뭐 하는 일이에요?'라고 물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일을 했다면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은 인간을 자처하며, 인생의 선택에 후회한다.


 만약, 내가 결혼이 아닌 꿈을 선택했다면? 정말 후회 없이 행복했을까?
 그것도 장담 못하겠다. 남자 친구와 결국 헤어져, 지금까지 노처녀로 일만 하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나는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이랑 결혼을 했다면 행복했을까?' 하고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 같다. 나 역시, 어리석지만 그러하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다섯 살 아이가 놓고 간 작은 미니카, 열두 살 아이가 놓고 간 야구 글러브가 놓여있다. 그 옆에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구성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것은 스물일곱의 내가 가진 꿈이었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른 꿈을 안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늘 꿈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후회를 반복하더라도 나는 또 다른 꿈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 것도 언젠가 후회로 남을 수 있기에. 꿈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나는 계속 꿈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마음이 건강한 내가 참 마음에 든다.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 민들레처럼 꼿꼿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