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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Oct 14. 2019

이렇게, 민들레처럼 꼿꼿이



 '민들레'가 떠오른다고 했다.

 금요일마다 듣는 '이야기 치료' 수업 시간에 옆 짝꿍과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해주는 시간, 나는 짝꿍에게 '민들레'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나 자신을 꽃과 대입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민들레꽃처럼 화사한 얼굴도, 낭창낭창한 몸도 아니기에. 짝꿍은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글 쓰는 자'의 길을 걸어온 모습이 '민들레' 같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나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도, 그 속에서 '포기를 모르는 나'를 발견해주신 것에 무척 감사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민들레'를 닮았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실력도, 외모도, 학벌도 없는 나였지만 언제나 '도전'했다. 비록, 소극적인 도전이었지만 한 번도 '나는 이제 끝이야'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기억이 더 많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해볼까?'에서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글짓기상을 받고 칭찬을 받은 나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줄 착각'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그렇듯, 한 번 글짓기상을 받고 나니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많은 친구들의 손가락이 나를 추천했다. 잘하는 것이 없는 소극적인 아이가 '글짓기'라는 오아시스를 발견하며,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매우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성적인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많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점점 변화를 시도했다. 예전에는 누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놀라운 변화는 수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기질을 타고난 자가 감수해야 할 외로움과 소외를 오롯이 겪은 덕인 것이다.


 어쩌면 민들레는 '초 긍정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힘센 바람에 허리가 휘고, 웬 왕발을 가진 사람에게 밟혔으며, 누군가 장난스레 꽃잎을 떼어 아팠는데도 금방 잊고 다시 꼿꼿이 일어서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동화공모전에서 3번 떨어졌고 드라마 공모전에서 6번 떨어졌으며, 신춘문예에서도 3번 떨어졌다. 그때마다 총 맞은 것처럼 피를 철철 흘리며 없이 쓰러졌다.
 그런데 그 충격의 시간은 석 달이면 끝이다. 아니 어쩔 때는 한 달 후에 바로 정신 차리고 다시 명랑하게 살아간다. 글을 쓰고, 글을 고치며.


 첫 아이가 열두 살이 되고, 나는 조금 민망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동화 한 편을 써서 공모전에 냈는데 떨어진 것이다. 그러고도 또 금세 드라마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제 동화는 안 써요? 이제 드라마 쓸 거예요? 동화 발표는 언제 나와요?"


 관심 없는 척하더니, 발표 시기까지 기억하고 있는 아이였다.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답했다.


"엄마는 꼭 공모전 당선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야. 엄마는 글 쓰는 게 취미거든. 재미있어서 하는 거야. 그러다가 당선되면 좋고, 아니어도 힐링의 취미 시간을 보냈으니 좋고."


 아이는, 어색한 미소를 보이고 돌아갔다.
 '당선'으로 엄마의 존재를 위대하게 부각하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몇 년 전인가, 아이들끼리 부모님 직업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있었나 보다. 그때 우리 아이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단다. '우리 엄마는 작가야.'라고. 그런데 아이나 어른이나 '작가'라고 하면 하는 말이 있다.


"무슨 책 썼는데?"


 그 날, 아이는 집에 돌아와 나에게 물었다. 무슨 책을 썼냐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미안해졌다. 엄마는 '작가'가 아니라 그냥 '가정주부'라고 가르칠 걸.


 사실, 저자로 책을 낸 적이 없어서 그렇지 편집자, 교정교열자로 책을 낸 적은 많다. 어떤 때는 편집인에 내 이름이 들어간 적이 있고, 어떤 때는 회사 이름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물론, 상업적인 목표로 글을 쓴 프리랜서 작가 시절의 콘텐츠 작성은 내 이름이 들어갔어도 '책'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 한 권을 다 쓴 작가'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민들레처럼 꼿꼿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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