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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Oct 14. 2019

프리랜서에게 돈은 무조건 중요해!


 프리랜서에게 돈은 무조건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프리랜서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돈이 들어오면 흥청망청 쓰기보다는 저축하고 모아놓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프리랜서는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스물다섯 살 때, 다니던 직장을 일 년 만에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나는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었다. 왜 안 그렇겠나? 모아놓은 돈은 점점 줄어들고, 부모님은 여전히 직장 잘 다니고 있는 줄 알고 계셨으니.....(당시, 부모님은 어느 직장이든 오래 다니길 강렬히 희망하셨다.)


 그래서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 같은 사이트를 하루에도 수십 번 접속해,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 즉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통했는지, 전화가 여러 군데서 왔다. 물론 전화가 왔다고 모두 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샘플 작업 후 결정하겠다고 하고, 어떤 경우는 내가 쓴 글로 서비스를 해본 후 성과가 좋으면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다.(누굴 바보로 아나...)


 그러던 중, 한 업체로부터 '홍보영상 시나리오'를 작성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홍보영상 시나리오는 처음이라고 말했지만, 실장이라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은 웬만큼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당시 홍보영상 시나리오 작가를 뽑는 일이 많았기에, 나는 무조건 '도전'을 외치고 면접 겸 회의를 하러 회사에 방문했다.


 회사에는 연출과 촬영감독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회의실에 나를 앉혀두고 자신들이 할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일이 급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설명을 들었고, 실제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홍보영상 시나리오 작성은 처음이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당시, kbs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1차까지 합격한 이력은 있었으나 드라마와 홍보영상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 난감했다.


 실장님에게 혹, 이전에 작업하신 분의 시나리오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실장님은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이전에 하신 분들 시나리오가 있긴 한데, 영 별로라.. 글로리 씨만의 특색이 담기게 자유롭게 써보세요. 우리는 정형화된 것보다는 새로운 형태를 원하고 있거든요."


 실장님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이전에 작성한 시나리오를 보면 그와 비슷한 형태로 써 내려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다 마치고, 문 앞을 나오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계약서는 안 쓰나요?"


"계약서? 우리는 그런 거 안 써요. 무슨 일 생기면 여기 사무실로 와요. 매일 출근해서 여기서 쓰셔도 되고."


 무엇인가 명쾌한 답은 아니었지만,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실장님의 답변을 믿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그 분위기에서 계약서를 쓰겠다고 고집부리면 같이 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물러난 것도 있었다.


 이후, 1차로 나름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메일로 보냈고 피드백은 2주나 훌쩍 지나고야 답변이 왔다. 답변은 자신이 생각한 콘셉트와 너무 동떨어져 도저히 쓸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다른 프로젝트를 하자고 했다. 이번에는 직접 출장을 가야 한다고 했다. 왜인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쪽 일이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초짜라 이해를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날 며칠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용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죄송한데요. 오늘 출장은 못 갈 것 같아요. 저는 원하시는 콘셉트대로 시나리오를 써서 보내드렸는데, 수정 요청도 없이 무조건 쓸 수 없다고 하시니 이해도 안 가요. 소정의 수고료라도 받아야 오늘 출장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이미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부분이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실장이란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잠깐만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연락이 없었다.


 두 달 동안,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한 가지는 '나는 큰 일 날 뻔했다.'였다. 출장까지 따라가 쓴 시나리오를 또 같은 방법으로 캔슬을 당했을 텐데 미리 피했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또 하나는, '분하다.'였다. 두 달 동안 바보같이 실장의 전화를 기다렸다. 물론 2주쯤 지났을 때, 나는 원고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나 스물다섯의 나는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 달이 지나고, 실장에게 전화를 지속적으로 했다. 그는 절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사까지 찾아갈까 생각했지만, 사기성 짙은 그가 나를 이상한 사람 아니 실력도 없는 프리랜서 나부랭이로 취급할 것 같아 두려웠다. (막말로 계약서도 없는데, 내가 그를 신고한들 무슨 소득이 있으랴...)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나는 잊기로 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하여.


 이후, 트라우마가 생겼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돈'부터 물어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특히, 계약서는 꼭 쓰자고 했다. 친구 말로는 계약서를 써도 '날강도짓 하는 회사'가 많다고 한다. 계약서의 작은 글씨들 속에 얼마든 빠져나갈만한 멘트가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일을 제안해주는 회사에 고마운 마음까지 갖게 되는 나 같은 프리랜서들은 계약서 속 글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계약하기는 어렵다. 크게 손해 보는 상황이 아니면 빨리 일을 시작할 수밖에. 망설이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물론 이후로도 나는 계약서를 쓰지 않고 종종 일을 했다. 그럴 때마다 '모'아니면 '도'였다. 끝까지 믿고 함께 일할 수 있었거나, 어이없는 시간 지연으로 원고료를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 받거나. 아니면 못 받거나.


 프리랜서에게 돈은 매우 소중하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글을 교정 교열해주거나 콘텐츠 작성해주는 작가로 일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속상했던 일의 대부분은 돈 때문이었다. '돈'에 대한 문제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분명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돈을 얼마나 줄 것인지, 어떻게 정산해줄 것인가를 묻는다. 덕분에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해를 받더라도 내가 노력한 대가의 돈을 받지 못해, 평생 한으로 남기기보다는 어떻게든 받는 것이 '나'를 위해서 좋다고 본다. 일을 받아하는 프리랜서니까 무조건 참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을 못하더라도 '돈으로 억울한 일' 당하지 않는 프리랜서로 존재하는 것이,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서로 제시한 조건 즉 '돈'이 맞지 않아 헤어진 업체가 있다. 그들은 내게 무례했다. 적은 돈으로 나의 소중한 정신 노동력을 갈취하려 한 것이다. 비록 일거리를 꾸준히 주는 업체를 잃었지만, 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겨우 작가 한 명과 작별한 일일 수 있지만, 제 몫에 대해 정당히 요구하는 작가 한 명을 보았을 것이다. 이후 그들이 다른 작가에게 원고료 제안을 할 때 조금은 더 긴장하고 제안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잘했다. 글로리. 멋져.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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