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열둘, 견딜 수 있음

기쁘게 살기 프로젝트

by 류혜진

빵집에 가서 정신없이 빵을 담아 계산하고,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손 소독을 했다. 계산원과 주고받은 카드와 빵 봉지에도 소독약을 뿌린다. 이를 지켜본 남편은, 빵을 만든 사람은 믿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제빵사가 균을 보유한 자였다면, 그 사람의 호흡과 함께 만들어진 빵도 믿을 수가 없지 않냐는 것.


갑자기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KF94가 주는 부담스러운 흡습력 때문인지, 심리적 부담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건강하게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요 몇 달 동안 참으로 간절히도 느끼고 있다. 웬만한 물건들은 모두 온라인 마켓에서 배달을 시키고, 어쩌다 한 번 산책이라도 하고 오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노출된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어낸다.


사람? 가족 외에 만난 적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과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나만? 아니, 그들도 그렇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 보였는데, 상대방은 모른다. 아뿔싸! 마스크를 썼으니, 미소를 지어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웃을 때 눈도 같이 웃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눈웃음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라 안타깝다.


이게 사는 건가?
자조적인 물음에, 나는 또 대답한다.


사는 거지.
먹고, 자고, 움직이니까 사는 거지.

그런데, 마음 한 켠 우울함이 올라오려 한다.

이게 뭐야? 이게 사는 거야? 먹고 자고 움직이면 사는 거 맞아?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나를 자제한다.


우울한 마음 끌어올리지 마.

어허! 우울, 너! 오지 마!


그리고 애써 담담한 척 목소리를 솔 톤으로 끌어올리고 아이들에게 유치한 장난을 건넨다. 아이들도 책 봤다가, 텔레비전 봤다가, 운 좋으면 밖에 나가 자전거라도 타고 들어오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며칠 전 6살 둘째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울상을 짓는다.


엄마, 친구들이 나하고만 안 놀아줘요. 왜 나 혼자만 놀아요?


친구들도 다 집에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니야, 친구들끼리만 놀고 있는 것 같아. 나만 빼고.


6살 아이는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기만 따돌림당하고 있다고 말이다. 훌쩍거리는 아이의 등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오고 말았는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작은 편의점에 가서 초콜릿을 사 먹자고 했다.
순수한 아이는 금세 눈웃음을 지었다.
아이를 데리고 편의점에 들어가는 것도 꺼림칙했지만, 오늘은 마음을 크게 먹었다.


잠깐, 초콜릿만 사 가지고 나오는 거잖아...


살 떨리는 초콜릿 구매 시간을 마치고, 아이의 전신에 소독약을 뿌렸다.
혹시나, 혹시나 운 나쁘게 코로나가 들러붙을까 봐.


아이는 집에 돌아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초콜릿을 먹었다.

집에도 초콜릿이 있었지만, 아이가 직접 편의점에 가서 고른 초콜릿을 먹는 것이 기쁜 듯했다.

직접 물건을 선택할 수 있는 것까지도 기쁨이 될 줄이야.


아이는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며, 놀이터에서 느꼈던 설움을 잠시 잊은 듯했다.


그래, 잘하고 있다.
잘 견뎌보자. 이렇게, 저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기쁘게 살아보자.
견디다 보면, 다시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을 게야. 힘내자! 파이팅!


기쁘다!

견딜 수 있으니까.

이전 11화기쁨 열 하나, 함께 살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