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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Nov 05. 2020

컴퓨터, 너 없었음 어쩔 뻔?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내 인생에 사람들과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 한 시간이 많을까?

 컴퓨터 모니터 마주 보고 속 이야기 한 시간이 많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한 시간이 더 많다.


 스무 살 때부터다. 대학교 1학기가 지나니, 모든 리포트를 수기가 아닌 한글 프로그램으로 작성해 출력해 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2000년 시절)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다. 자판을 겨우 익힌 터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겨울방학이 되었고, 나는 자판을 빨리 치는 연습에 맹렬히 매진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타자 속도가 늘지 않았고, 고심 끝에 매일 일기를 써보자고 결심했다. 한글 프로그램에 매일 일기를 쓰면, 책을 보고 독수리 타법으로 글자를 입력하는 것보다 훨씬 실력이 늘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 들었다. 매일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니, 머릿속에 있던 내용들을 빨리 손가락 끝으로 찍어내고 싶은 열망으로 실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아마도 일주일 만에 자판을 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일기를 써 내려갔던 것 같다.
 하얀 모니터 화면에 내 머릿속 생각을 바로 찍어내는 기쁨은 꽤 쏠쏠했다. 그때 신이 나서 어쭙잖은 실력으로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썼다. 부끄럽지만 그때 쓴 나의 첫 소설이 여전히 내 usb에 담겨 있다. 물론, 끝까지 읽기 어렵다. 스무 살, 딱 그 나이가 쓴 소설답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 계기로 나는 컴퓨터 앞에 꽤 자주 앉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앉아서 뉴스를 보았고, 과제도 컴퓨터로,  싸이월드도 컴퓨터로, 쇼핑도 컴퓨터로, 채팅도 컴퓨터로~ 무엇이든 다 컴퓨터로 했다. 그러다 취직을 했는데, 이 또한 모바일 회사라 컴퓨터로 글을 고치는 일을 했고, 웹진도, 기사도 다 컴퓨터 앞에서 했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와 함께 씨름했던 것 같다.


 그러다 28살 때, 처음으로 컴퓨터와 등을 졌다. 첫 아이를 낳은 것이다. 난생처음이었다. 사람 얼굴을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 바라본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오로지 내게만 집중되었던 내 인생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아이는 그야말로 24시간 내가 필요했다. 주로 우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는데, 초보 엄마는 알아들을 수 없어 곤욕이었다. 그러니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남편이 퇴근해서 아이를 봐줄 때 샤워할 때만이 오롯이 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점점 해방되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간간히 편집 일이 들어오면 단기적으로 했지만, 예전처럼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생각을 하고, 내 글을 쓰고, 내 미래를 꿈꾸는 것이 어색해진 것이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낮은 자존감이었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 사람 귀찮게 할 일이었다. 혹 블라인드 채용으로 회사에 들어간들, 팀장과 같은 나이일 테니 말이다. 물론 매일 출근하라 해도 아이를 두고 가는 것은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프리랜서, 재택근무를 찾았던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컴퓨터 앞에 꽤 오래 앉아 있는다. 다음 브런치로 글도 쓰고, 유튜브도 만들고, 네이버 블로그도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서 나는 오로지 나로 존재한다. 꿈을 향해 돌진하던 그 시절의 나,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자판을 두드리던 나, 모니터를 째려보며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던 나로 말이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문득, 생각이 많아진다.

 확실한 것은 녀석은 내 인생에 참 고마운 존재라는 것.

 고맙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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