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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Oct 25. 2020

연필을 보다가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살짝 뾰족한 까만색 머리를 가진 이 녀석은, 손에 쥔 사람들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녀석은 글자를 쓰고, 그림도 그리는 '연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녀석의 겉옷은 매우 다양하다.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들을 위해 만화영화 그림을, 고학년을 위해 서정적인 그림을, 그 어떤 예술가를 위해 모던한 색으로 휘감고 있기도 한다.


 내가 처음 연필을 접했을 때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시절, 나는 '가나다라'도 모른 채 국민학교를 들어갔다. 그때는 모두 다 그랬다.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한글 정도는 떼고 들어가지만, 그 시절 천재 소리 듣는 아이 아니고서는 한글을 떼고 학교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필통을 열고 지난밤 엄마와 함께 깎은 연필 다섯 자루가 가지런히 담겨 있던 장면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연필깎이가 있었지만, 굳이 칼로 연필 깎는 모습을 보여주신 엄마 덕분이다. 다소 거칠고 빼뚤빼뚤하게 깎인 연필이지만, 지난밤 왁자지껄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또르르르~~

 낯선 연필 한 자루가 굴러온다.


 "앗, 미안!"

 옆 짝꿍 연필이었다. 짝꿍은 파란색 바탕에 로봇이 그려진 연필을 쥐고, 진땀을 흘리며 글씨를 쓰고 있었다. 잘 안되는지 지우개로 연신 지워가며 다시 쓰는데, 까만 연필의 얼룩이 공책 여백과 손에도 잔뜩 묻어 있었다. 아마도 그 친구는 손에 묻은 까만 연필 얼룩을 내내 지우지 않다가, 콧등을 훔쳤을게다. 그리고 코 언저리에 까만 연필을 뭍히고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등짝 한 번 맞고 씻었으리라.

 그 시절, 연필은 왜 그리도 빨리 닳는지 며칠만 지나면 몽당연필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밤마다 새 연필로 채워주시며, 쓸데없는 낙서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 된다며.
 
 나도 모르게 학습이 되었나 보다. 몇 년 전,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연필 다섯 자루를 잘 깎아 필통에 넣어주며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라고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나는, 올드한 내 생각과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AI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부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관심과 집중의 과정은 '공부'이지만, 적어도 몇 년 전 내가 말한 공부는 '국영수사과'중심이었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게임을 하다가 게이머가 되고, 컴퓨터 붙들고 씨름하다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시대다. 13살인 아들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또 올드한 말을 하고 말았다.


 "핸드폰만 붙잡고 있지 말고, 독서 좀 해라."
 
 "저, 유튜브 편집하는 법 검색하고 있었어요."

 아들이 뾰로퉁한 표정으로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한다. 적어도 자신은 놀지 않고 정보를 탐색 중이었으므로 당당하다는 표현이리라.


 문득, 독서를 왜 할까 떠올려 봤다. 예부터 독서를 하라고 한 이유는, 책 속에 지식이 있고 정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스마트폰 속에 다 있다. 영어 단어, 한자, 심지어 일반상식까지 조금만 검색하면 다 나온다. 물론, 모두 글로 설명되어 있다. 스마트폰 속, 글을 읽는 것도 독서가 아닐까? 생각할수록 '그렇다'라고 생각이 되어, 독서하라고 다그친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독서를 하고 있어. 스마트폰으로 지식과 정보를 검색하고 읽고 있으니 독서의 의미는 충분히 충족되는 셈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연필을 보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흘렀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처럼 연필을 사용할 일이 많지는 않다. 한글도 터치펜으로 배우는 시대이니 말이다. 하지만 연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터치펜보다, 온 힘을 손끝에 모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더 특별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 역시 그렇다. 스마트폰 속 정보를 터치 한 번으로 찾아 읽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종이 질감을 느끼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행위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심지어, 스마트한 이 시대에 아날로그적 독서와 연필의 질감은 작지만 확실한 힐링이 된다. 꼰대같지만 사실이다.



 진짜는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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