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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Nov 23. 2020

김장김치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김치가 냉장고의 70퍼센트를 차지했다.

친정에서, 시댁에서 보내주신 고마운 김치다.

엄마는 파김치, 알타리 김치, 동치미를 주셨고 어머니는 백김치와 겉절이를 보내주셨다. 물론, 통으로!


 그 통들이 냉장실에 다 들어갔다. 참고로 우리 집에는 김치냉장고가 없다. 아니, 있었는데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중고매장에 팔았다.


 김치냉장고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남편과 나는 젊은이? 입맛이라 김치는 몇 조각 먹을 뿐이었고 다섯 살 아이도 별로 먹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그러니까 남편과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첫째가 커갈수록 7월쯤 되면 부모님 댁에 전화해 마치 맡겨놓은 김치인 것 마냥 '김치 한 통 가지러 갈게요'라고 했다. 심지어, 이제 마흔 중반이 된 남편은 밥상에 김치가 없으면 김치를 달라고 한다.


 슬슬, 김치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장은 사지 않을 생각이다. 김치냉장고를 샀다는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양가 어머니들께서 또 열심히 김치를 담가 날라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이를 보고 있다. ㅎㅎ


 며칠 전, 맘카페에서 '김장김치 팔아 주세요'라는 글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가 보니, 양가 어머니가 모두 계시지 않고 본인도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데 김장김치가 먹고 싶어 한 통 사고 싶다는 글이었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양가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상황을, 김장김치를 사고 싶어 질 그 상황을.


 돌이켜보니, 나는 참 복이 많았다. 스물일곱에 결혼해 마흔이 되도록 한 번도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없다. 김치를 담고 싶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양가 부모님의 끊임없는 조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뜸 전화해 김치 가지러 간다고, 마치 맡겨놓은 김치인 것 마냥 행동했던 것 같다. 문득, 미안해진다.


 김치를 담가본 적은 없어도, 김치를 담그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줄은 안다. 배추를 절여서 여러 번 씻고, 고춧가루, 무 생채, 파, 마늘, 생각, 액젓, 찹쌀풀 등 수많은 재료를 미리 다듬고 준비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그 과정을 너무나 자주 봤기에, 어느새 나는 김치를 담가먹지 않겠다고 무언의 선언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김장 때 가서 다 절여놓은 배추에 다 만들어놓은 양념장만 바르고 오기는 했다. 사실, 그 과정도 꽤 힘들다. 평소 컴퓨터 앞에 많이 앉아 있어 어깨가 자주 아픈 나는 그 몇 시간 쪼그려 앉아 김장하는 것만으로도 들어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엄마와 어머니가 아직도 김치를 담그고 계신다. 몇 번이고 사 먹자고 했다. 고생하지 말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분들은 사 먹는 김치는 입에 맞지 않을 것임을.
 나는 내 변명을 해본다. '내가 담가드린들, 입에 맞으실까...'라고 말이다.


 남편과 냉장고가 김치로 가득 찼다는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김치만 먹자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데 문득 열세 살 아들이 '엄마, 나중에 나도 김치 담가줄 거지?' 한다.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솔직한 말이 나가버렸다.

 "사 먹자. 엄마 어깨 아픈데"
 
 그러자, 아들이 무척 서운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한편, 어떻게 엄마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는 무언의 표정이 스친다. 나는 애써 모른 척한다.


 "엄마, 그냥 사서 주시고 엄마가 담갔다고 해주세요."
 아들의 말에, 많은 생각이 든다.


 '꼭 그래야 하나? 사서 주는 것이면 그냥 사 줬다고 말하고 싶은데...'
 하지만, 아들의 간절한 바람을 깨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 엄마와 어머니도 자식들이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싫다는데도 김치를 바리바리 싸주시는 것일까?


 그 언젠가, 나도, 우리 남편도 우리 아들처럼 그렇게 바랐던 것일까?
 
 우리 엄마가 해준 것!
 나를 위한!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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