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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Nov 17. 2020

침체되었던 나에게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그 한 시간 집에 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우연이지만 귀중한 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 혼자 걸을 수 있는.


 혼자 걷는 게 뭐 그리 귀할까 싶겠지만, 나처럼 한 번 집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귀한 시간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시간을 일부러 만드는 것은 더 귀찮은 사람?


 문득, 결혼 전의 내 '자아'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매우 철이 없고 무책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니, 조금 더 애정 있게 보자면 조금 침체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 시곗바늘이 바쁘게 움직여 약속 시간이 되면 미치도록 나가기 싫어져다. 왜 그런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랐던 시절이다. 이성적으로는 제시간에 나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약속했던 친구에게 전화해 일이 있으니 다음에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찰나의 갈등을 이겨내고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대화를 리드하고 즐겁게 웃었다. 실제로 참 즐거웠다.

 이런 나를, 마흔의 내가 진단해보건대 '침체된 나'였던 것 같다. 침체된 나는 누군가에게 기죽고 싶지 않아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는 날은, 만나러 나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눈치챘지만 모른 척해주었을까? 아마도 후자인 것 같다. 갑자기 약속을 미루고, 바쁜 척하는 나를 미워하기보다는 아쉬워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내 말을 믿어주었던 것일까?


 감사하게도 침체된 나의 못된 버릇을 고칠만한 일이 발생했다. 몇 마디 퉁명스러운 대화만으로도 이심전심을 느낄 수 있는 중학교 때 친구가 꼭 나와 같았던 것이다. 그 친구는 약속을 해놓고 꼭 한 시간 전에, 아니 30분 전에 전화해서 다음에 보자고 했다. 더 기막힌 것은, 나는 그 친구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랬으니.
 하지만 이십 대를 넘어, 서른이 되어도, 마흔 가까이가 되어도 똑같은 그 친구를 보며 내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이제는 작은 약속도 소중히 여긴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그렇게 나는 침체된 나를 이해하면서도 뜯어고칠 수 있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까지 남은 한 시간 동안,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길가라 사람들이 오가고, 제법 차도 많이 다녔지만 볕이 따뜻했다. 옆에서 쫑알대는 아이가 없어 어쩐지 허전한 마음도 들었다. 어디든 늘 옆에 끼고 다녀야 하는 둘째의 질문에 답해주다가 지칠 때도 있지만, 막상 혼자 있으니 허전하다. 사람처럼 적응을 잘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마스크를 쓰는 일상도 이제는 익숙하다. 혼자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한 지금의 내 자아가 된 것처럼.

 
 구두가 아닌 슬립온을 신고 외출 때마다 똑같은 외투와 똑같은 청바지를 입는 지금의 나는, 참 편하고 행복하다. 차려입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 없고, 키가 작아 무조건 높은 구두를 신었던 이십 대의 침체된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이십 대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푸근한 언니로 다가가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감 가져~ 너 진짜 멋진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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