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었다.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일반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 유명 대학 병원으로 옮겨져 진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마침 주치의 선생님께서 연세가 상당히 많으신 베테랑 교수님이셨다. 이래저래 몸이 안 좋아 원인을 찾지 못해 대학 병원까지 간 상태였기 때문에 그 분야 최고 권위자이신 교수님을 뵈면 병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병세도 좋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몇 일 예약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치의 교수님 진료를 받게 되었고, 교수님을 뵙자 마자 그간 진료를 보아왔던 의사 선생님들로부터 진료를 받으며 들었던 얘기들, 필자가 여기까지 오게 된 불편함들, 그리고 과거 진료했던 의사선생님들이 전문의 선생님을 뵈면 꼭 말씀드리라고 했었던 지병에 대한 얘기, 그간 먹었던 약들의 처방전 얘기 등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뭐 필자가 이렇게까지 구구절절이 주치의 교수님께 말을 늘어놓게 된 이유는 이전 진료했던 의사선생님들이 전문 주치의 교수님을 뵈면 꼭 이 말씀은 드려야 한다고 했던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권위자이신 주치의 교수님께서 필자를 째려보시더니 벌컥 짜증을 내셨다. "제가 진료를 하는건데, 왜 이렇게 말씀이 많으세요. 제가 병세에 대해 질문하는 것만 답하세요. 이러니까 진료 시간이 늘어지는거 아닙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 병세 진단에 필요 없는 말들을 자꾸하면 진료를 어떻게 합니까? 그냥 입원하실래요?"
솔직히 말하면 병원 진료를 받다가 의사선생님께 혼난 적이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이 흔히 검찰에 출두하면 검사가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다그치고, 혼낸다고 하더니 이런 기분인가? 뭐 일단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왔고, 일반 의사 선생님들이 원인을 찾지 못한 병세를 이 주치의 교수님께서는 찾을 수 있을 것같으니, 지금 당장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일단 교수님 말씀을 잘 따라야 겠다고 생각해 곧바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교수님께서 질문하시는 것들에 충실히 답변만 했다. 그런데 역시 경험도 많고, 그 분야 전문의이신만큼 진단은 정확했고, 필자도 아픈지 모르고 무심히 지나쳤던 증상들까지도 질문을 하시고, 꼼꼼히 기록하셨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할 즈음 교수님게서는 다시 잔소리를 하셨다. 병세가 심각하고, 희귀해서 질문할 것이 많은데, 환자가 자기 얘기만 하다 보니 진료가 길어졌다는거다. 그러면서 한 5분 여를 혼내면서 훈계를 하셨다. 병원에 와서는 의사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의사가 질문하는거에 답이나 하면 되지 왜 먼저 자기 증상을 묻지도 않았는데 시시콜콜 답하느냐는 것이었다.
역시나 필자가 진료를 받은 추지의 교수님은 명성만큼이나 훌륭한 명의셨다. 일반 의사들이 잘 알지 못하는 증상에 대해 잘 알고 계셨고, 이런 증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의심되는 질병이 있으니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불치병은 아니지만, 유전적 요인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고, 치료를 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거다. 필자가 워낙 어릴 적부터 겪어오던 증상들이라 이런 증상들이 병이고,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못하고 지나쳐 왔는데, 국내 전문의 중에서도 몇 안되는 의사들만 아는 증상이니 오래 치료할 각오를 하라고 하셨다. 필자는 결국 주눅이 들어 병명이 뭔지 묻지도 못하고, 꼭 해야 하는 지병 등에 대해서도 한 마디 말도 못한채 잘 진료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인사만 드리고 진료실을 나왔다.
다다음주에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교수님을 찾아뵙고 진료받기로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흔한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주치의 교수님이 아니면 필자 몸에 나타난 이상 증세에 대한 원인을 찾지 못할 것이고,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교수님만이 병을 치료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필자가 주치의 교수님께 진료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도 드렸지만, 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말씀드린게 아니라 단지 필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절대 약자의 입장에서 비굴하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만들어낸 태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냥 병원을 옮길까?',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선생님한테 진료를 할까?' 하고 생각을 하다 결국 저 교수님이 아니면 이 증세의 원인 조차 파악 못하고, 치료는 시작도 못할 것같아 감정적으로는 기분이 상하지만, 그냥 그 주치의 교수님의 치료로 완치될 때까지 필자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참기로 했다.
그 날 반차를 사용해 오전에 병원 진료를 마쳤고, 오후에는 회사로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마침 직장 상사로부터 한 달전에 했던 리더십 평가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는데, 팀장인 필자에 대한 팀원들이 리더십 평가가 형편 없었다. 필자가 기대했던 것과 정 반대의 결과로, 평가 결과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팀장, 임원들에게 리더십 Coaching을 해주어야 하는 인사팀장을 오래 했던 필자에게는 그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이었고, '나도 조직원들에게 이렇게 인정을 못 받는데, 지금까지 내가 조언을 해줬던 사람들이 이 결과를 알게 되면 얼마나 비웃을까?' 하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 편으로는 일 년간 함께 해 온 팀원들에게 서운한 생각도 들었고, 나중에는 배신감(?) 같은 감정도 생겼다. 필자 앞에서는 '우리 팀이 성과가 잘 나와서 뿌듯하다고 하고, 팀장님 덕분에 소속감도 느끼게 되었고, 많이 성장하게 되었으며, 회사 생활이 보람되고, 인정받는 것같아 자부심도 느낀다'고 하더니만, 뒤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이렇게 리더십 평가를 하고서는 요 한 달 동안 억지 웃음을 지으며 친한 척하고, 보고하고, 피드백 받고 했던건가?
Scoring한 점수도 좋지 않았지만, 주관식 리더십 평가는 더 가관이었다. '대화가 안 통한다', '본인의 얘기만 하고, 실무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팀장의 Solution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팀원들의 애로 사항에 대한 배려가 없다', '팀 성과는 독보적이지만, 실무자들이 업무에 대한 Ownership이 점점 떨어진다', '업무를 보고한다는 느낌 보다는 같이 한다는 느낌으로 일을 하고 싶다' 등등 필자가 내 손으로 열거하기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차마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며칠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필자가 리더십에서 고쳐야 할 점과 보완해야 할 점, 장점으로 더 키워야 할 점들을 List-up 해가며 침착하게 정리를 하다 문득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던 날이 떠올랐다. 우리 팀원들의 상황이나 생각이 며칠 전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던 필자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회사에서 실적을 내고, 실력을 향상시키고, 인정을 받으려면 리더인 필자에게 잘 보여야 했을텐데, 필자의 Communication 방식이 결국 주치의 교수님과 비슷했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필자도 증세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하기 위해 주치의 교수님에게 잘 보여 진료 날짜를 예약하고, 잘 고쳐주시길 바래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인사드렸던 것처럼 우리 팀원들도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인정받기 위해 필자에게 웃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속으로는 일방적인 Communication에 불만을 갖고, 필자가 다른 병원, 다른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의뢰할까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팀원들도 다른 팀으로 전환배치 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팀장을 만나 좀 편하게 일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필자의 경우 이 증세가 반드시 고쳐야 하는 병이기에 그래도 결국엔 그 주치의 교수님께 필자의 몸을 맡기기로 했지만, 우리 팀원들은 그만큼 절박하지는 않기 때문에 반드시 필자와 함께 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필자가 스스로 나 자신을 생각하기에 아직 젊고, 능력있는 팀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 어린 팀원들이 보기에, 특히 신입사원이 보기에는 이미 꼰대(?) 팀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타분하고, 경험 많다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고(?), 일의 결과나 성과가 필자가 말한대로 이루어지기라도 하면 '것봐 니들이 하자는 대로 했으면 큰일날 뻔했지? 내가 하자는대로 하니까 이렇게라도 결과가 나오는거야'하며 거들먹 거리고 그랬을거다. 필자가 주치의 교수님 프로필을 찾아보니, 연세가 환갑 정도 되신 노교수님이신데, 필자와 주치의 교수님의 나이차와 필자와 신입사원의 나이차가 엇비슷할 것같다. 그렇기에 필자가 주치의 교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이 우리 팀원들이 필자를 보는 시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쯤 생각이 미치니 필자의 마음이 착잡하고, 답답하며, 앞으로 리더로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머리속이 하얘진다.
그래서 일단 필자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기로 했다. 필자가 팀원들에게 느꼈던 서운함을 주치의 교수님이 필자에게 느끼시지 않도록 주치의 교수님에 대해 진심으로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필자의 병을 고쳐주시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필자가 팀원들에게 이렇게 육성시켜주고, 회사에서 인정받게 해줬음 고마워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졌던 것처럼 일반 의사 선생님들이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필자 몸의 이상 상태의 원인도 파악해 주시고, 병을 치료해 주시는 주치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기로 한거다. 그 분도 아마 필자와 같은 마음이셨을거다. '누구도 못 고치는 병을 내가 고쳐준다는데 감사해야지 기분 나빠하는게 말이돼?' 이렇게 생각하실만큼 성과주의, 의사의 본문에 충실한 분이신 것같았다.(인사를 오래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성향을 파악한 경험으로 이 정도 판단은 가능한 것같다)
그리고 앞으로 팀원들과의 상호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는 필자가 주치의 교수님께 느꼈던 기분과 서운함을 그들이 느끼지 않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겠다. 필자가 그간 일반 의사 선생님들의 진료를 받으며 경험했던 일이나 겪어왔던 몇 몇 증상들을 고심해 준비해와 주치의 교수님께 정성들여 풀어놨던 것처럼 팀원들도 팀장에게 보고를 하려면 고민도 하고, 생각도 많이 해서 나름대로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일텐데, 필자의 회사생활 경험에 비추어 말도 안되는 추론이고, 되지도 않는 결론이라고 해도 그들의 정성을 고려해 말을 끊지 말고, 일단 끝까지 들어주고, 판단을 유보하는 성의라도 보이도록 노력해야 겠다. 왜냐하면 그날 필자가 주치의 교수님께 드렸던 말씀 대부분이 병의 원인을 밝히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의학 지식이 전무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고심하고, 고심해 어렵게 꺼낸 말이었기에 결과적으로 병의 진단에는 도움이 안되는 시간낭비였지만, 필자의 Comment들이 묵살당하고, 가치없는 것들로 평가 절하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쾌했기에 진료나 치료 등의 성과, 결과에 대한 감사함과는 무관하게 감정적으로 불편해 다른 병원으로 옮길 생각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팀원들과의 관계, 주치의 교수님과의 관계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았고, 상대의 입장에서 필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고심해 보았다. 그렇다면 취업을 앞두고 있고, 회사에 취업한 후 신입사원이 된 분들께서는 본인의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어떤 상황에서든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회사 선배나 팀장이 업무에 대해 조언을 하면 본인 생각과 다소 다를지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받아들여 보도록 노력하면 회사 업무의 성과도 좋을 것이고, 본인의 인성 평가도 호평 일색일 것이다. 그러다 회사에서 선배가 되면 본인이 신입사원 시절 생각했던 입장에서 후배들을 대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도록 노력한다면 성공적인 직장생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고,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가 쉽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본인에 대한 주변 평가가 서서히 좋지 않게 될 것이다. 늘 투덜거리고, 짜증내고, 잘되면 자기 덕, 안되면 남탓하는 사람이라며 주변 동료들이 점차 불만을 쏟아낼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 이런 비난은 절대 당사자 앞에서 하지 않고, 뒤에서 하니, 본인은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이같은 개탄할 상황을 모를 수밖에 없다. 항상 내 생각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