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좀 더 읽기
더럽게 아름답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에 대한 첫 인상은 이랬다. 그도 그럴것이 이 영화에는 탐미주의자 박찬욱 감독의 미학이 응집돼 있었다. 미술은 완벽했고, 로케는 환상적이었으며, 의상은 아름다웠다. 김민희의 연기 역시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저속한 대사와 병든 인물들, 번들거리는 욕망, 핏빛으로 수렴하는 이야기는 영화의 아름다움에 더러움을 묻힌다. 넘치는 재능으로 그린 탕화랄까. 전작 [친절한 금자씨]가 현실적인(즉 더러운) 배경 위에 성녀 금자씨를 배치했듯이, [아가씨]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효과적이고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아름답다.
문제는 감독의 탐미주의가 영화의 주제 의식을 덮어버린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명제 하나가 영화의 운신을 좁힌다. 더럽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명제는 섬세한 감정선을 질척이는 섹스신(들)으로, 여성연대라는 문제의식을 나신을 탐닉하는 레즈비언 포르노그래피로 덮는다. 힘차게 박동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야 할 인물들은 정물화의 복숭아처럼 그저 탐스러운 육체로 데칼코마니를 그리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여성주의 걸작 [델마와 루이스] 사이에 남성주의 시각의 엑기스인 포르노를 껴놓는 대범한(아무도 안하는) 시도랄까. 후반부의 몇몇 장면은 정말 감독이 조낸(문자 그대로 조낸) 찍고 싶었구나 싶을 정도로 길고 긴 컷과 관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가장 에로틱한 장면은 별다른 노출없이 날카로운 이를 갈아주는 장면이었다는 게 함정.
스릴러 영화로서의 만듦새는 훌륭하다. 힘을 빼고 만들어도 이 정도다 - 라는 느낌. 사건을 재구성하고, 시점을 달리 하고(하녀→백작→아가씨), 앞뒤 맥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관객은 퍼즐을 짜맞추는 쾌감을 가져간다. 나 모 감독의 [곡성]이 멱살 잡고 흔들며 "뭐시 중한디? 현혹되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과 달리 박찬욱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관객에게 기술을 건다. 부드럽게 뒤통수를 내려치는 망치다.
김민희와 김태리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민희는 어느 순간 잘하는 연기의 차원에서 옆으로 슬며시 빠져 '김민희가 아니면 다른 누군들'의 연기를 선보인다. 이씨였으면 틀림없이 놀림을 받았을 김태리 역시 훌륭하다. 병든 인물들의 문어체 대사들을 소화하는 다른 배우들 역시 제 몫을 해낸다.
[아가씨]는 더럽게 아름다웠다. 감독의 미학은 인정하나 내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