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서울을 떠난다

15. 집도 절도 없는 시간

by 씨티훈


설마설마했다. 땅을 사고부터 전세만기일까지의 기간이 아주 여유로운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촉박한 시간은 아니었다.


21년 5월 완공 예정이던 토목공사가 7월 완공으로 미뤄지고, 아무리 늦어도 9월이면 끝날 거라는 토목사 대표의 호언장담도 다시 한번 번복되어, 결국 12월 찬 바람을 맞으며 주택 착공을 시작했다. 이듬해 2월엔 수도문제로 공사가 3주가량 중단되어 결국 4월 16일 전세만기일을 맞추지 못하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19개월 된 아이와 함께 지금 사는 지역도 아닌, 연고라곤 하나 없는 충남의 시골에서 에어비앤비 생활을 해야 하다니.. 게다가 우리의 짐은 에어비앤비에 들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보관 이사업체에 둬야 한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빌라 한 호실을 한 달 동안 빌렸다. 차로 5분 정도면 출근이 가능한게 엄청난 장점이었다. KTX를 타고 다닐 땐 도어투도어 편도 50분은 걸렸는데 15분 내로 직장까지 이동가능하니 아낄 수 있는 시간이 어마어마했다.


공사 현장과 거주지가 가까워지니 거의 매일 방문할 수 있었다. 집 근처에 아이를 보내기로 한 어린이 집이 있어서 아내가 아침에 등원을 시킨 후 현장에 다녀오는게 일과였다.



한 달간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집'이라는 공간이 없으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나날이 피로가 누적되어 갔다. 게다가 얼마 후에 떠날 곳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집도, 동네에도 더더욱 마음 붙이지 못했다. 이때 주거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최근의 우리나라는 집을(특히 아파트를) 주거의 개념보단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집의 존재 의의 1순위는 역시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생활 방식에 맞춰 외관 디자인부터 내부 동선을 고려하여 만든 '우리 집'의 완공이 더더욱 기다려졌다. 그렇게 길었던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나고, 최종 단계에 돌입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해외에 자주 나갔던 아버지는 호텔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수압체크와 더불어 변기의 물을 내려보는 것이라 했다. 짐을 풀고 나서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호텔 측은 문제의 방을 옮겨주기 전에 우선 수리를 시도해본다고 한다. 그래도 안되면 그제야 옮겨주는게 매뉴얼인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시간을 오물 냄새와 함께 기다리는게 매우 짜증 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어디 가면 별생각 없이 변기 물부터 내려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마루와 벽지 도배가 끝나고 주방공사 이틀, 입주청소 하루만 남겨둔 날이었다. 주방공사 시작 전날 저녁, 거의 완성된 우리의 집을 찾아갔다. 1층을 둘러보고 2층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 변기물을 내렸다. 이후 1층에 와보니 주방 위치에 물이 고여있었다. '저걸 아까 봤나?' 싶었는데 천장을 보니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패닉에 빠졌다. 현장소장에게 전화하니 소장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뛰어들어왔다. '와, 큰일 났다'만 되뇌며..


소장은 위층 변기와 연결된 배관 어딘가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 같다며, 천장을 잘라 열어봤을 때 발견하지 못하면 모두 뜯어내고 바꿔야 하는 대공사가 될 거라 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주방 인테리어, 청소, 그리고 보관이사라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걸 바꾸려면 위약금을 얼마나 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물론 만약 바꿨다면 시공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것이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새벽 한시에 연락이 왔다. 해당 위치의 배관에 못이 박혀있어서 그 부분을 교체했다고. 이때 2층에서 물을 내려보지 않았다면 이사 후에나 내려봤을 텐데 그때 대공사를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끝까지 방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축의 시간이 지나가고 주방 설치와 입주 청소까지 완료했다. 이제 이삿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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