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서울을 떠난다

16. 마당 있는 집에서의 삶 시작

by 씨티훈

길고 길었던 5개월 간의 공사가 끝나고, 드디어 이삿날이 밝았다. 그동안 창고에 보관 중이었던 짐 상태는 괜찮을지부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부 공사들이 언제 끝날지 깜깜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수십 년은 살아갈 우리의 보금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과 기쁨이 더 컸다.


내 이름으로 된 첫 집을 가진 거라 감회가 남달랐다. 서른 살에 독립하여 행복주택에서 4년, 오피스텔에서 1년, 신혼집 아파트 2년, 거의 7년 만에 나의 집이 생겼다. 그것도 온전히 내 땅 위에 지은 집. 우리 가족이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곳에 입성했다.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도 새집에 이사오니 좋았나 보다. 이사 다음날 아침 7시부터 마당으로 나가자고 졸랐다. 마당에서 푸쉬카를 타고 열 바퀴 넘게 돌았는데, 아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싶더라. 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선선한 5월 말의 날씨, 그리고 조용조용 들리는 풀벌레 소리. 난 푸쉬카를 끌고 있고 아이는 신나서 까르르거리고 있는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씬 같았다.



이사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조경이었다. 처음에 마당 잔디를 알아볼 땐 금잔디로 하고 싶었다. 동요에 나오는 그 금잔디 말이다. 아주 부드럽고 푹신푹신해서 아이들이 맨발로 밟기 좋다고 했는데 문제는 금잔디가 예민하다 보니 이를 키우는 잔디 농장이 많지 않았다. 보통 잔디는 마당에 잔디판을 얹고 모래로 덮는데, 금잔디는 씨를 뿌려 심는 방법 밖에 없었다. 씨를 뿌려서 어느 세월에 키우나 싶어 조선 잔디로 타협했다.



다음은 정원이다. 사다리꼴인 토지 특성상 마당과 정원이 이어지긴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약간 비밀의 정원 느낌으로 우리만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난 벚나무를 좋아해서 벚나무를 꼭 심고 싶었다. 아내는 셀릭스를 심고 싶어 했다. 그 외엔 딱히 생각해 둔 게 없었다.


조경에서 웃기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집 근처 농장에 방문해 벚나무와 셀릭스를 비롯하여 자작나무 등 몇 개를 추가로 샀다. 이후 농장 관계자가 집에 와서 심어주며 나름의 조경을 해줬다. 나무값과 인건비만 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화산송이라든가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은 식물 등 조경에 사용한 모든 것들이 청구되어 있었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격을 말하며 '하겠냐?'라고 물은 게 아니라 '이거 하면 이쁠 것 같아서 가져와 봤다'라고 말하며 사용한게 대부분이었다. 우린 그런 말이 뭔가 프로정신에 입각한? 그런거라 생각했는데 금액에 다 청구되어 있었다.


한 오십만 원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던 조경이 이백만 원 넘게 불어났다. 그래도 꾸며놓고 보니 이뻐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찜찜했다. 특히 인건비 부분이 영수증에 표기가 안되어 있어서 얼마냐 물으니 '알아서 달라'라고 했다. 일전에 부대토목 할 때도 인건비는 적혀 있지 않아 얼마냐 물었을 때 '알아서 달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알아서 달라'는 말이 참 애매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싶어 주면 '날도 더웠고 이거 이거 했는데 본전도 안 나오겠네' 이런다. 그래서 얼마를 더 드리면 되나요?라고 하면 '알아서 달라' 한다. 이게 충청도식 화법인가 싶었다.



얼추 마당이 정리되고 나니 진짜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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