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서울을 떠난다

17. 21세기에 풍수지리라니

by 씨티훈

내가 풍수지리를 말하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내 MBTI는 수십 번을 해봐도 INTJ(과학자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를 가장 가까이서 겪는 아내야말로 집을 짓거나 내부를 꾸밀 때 풍수 이야기를 꺼내는걸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뭔가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논문으로 써놓고선) 풍수에 신경쓰는게 스스로도 모순이라 생각지 않냐고 물은 적도 있지만, 결국 풍수지리도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처럼, 내 마음을 편하게 하면 되는거 아닌가의 기조로 아직도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풍수 전문가가 아니라 인터넷 포털에서 주워들은 잡지식으로 무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검색으로 알 수 있는 정보의 질이나 양에 한계가 뚜렷했고, 그러한 정보들은 같은 소재일지라도 완전 다른 말을 할 때가 많았다. 가령, 어떤 블로그에선 벚나무가 마당에 있으면 안 좋다라고 말하는 반면, 어떤 글은 좋다 이러고, 또 어떤 글은 안 좋지만 좋으려면 심는 방위를 잘 정하면 된다 이런 식이다.


그래도 여러 정보들을 취합해 보면 의견이 갈리는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좋다, 안 좋다로 명백히 나눠지는 소재가 있다. 대표적으로 현관문과 집 대문의 방향이다. 우리 집은 정남향이다 보니 현관을 동쪽으로 하면 좋다는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현관이 동쪽이면 대문은 동남쪽으로 하는게 좋다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풍수 때문에 집의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맞추고 싶었고 그렇게 되었다.


특히 내가 신경 쓴 건 침대의 방향이었다. 이게 약간 트라우마인가 싶은데, 아주 예전에 외할머니가 머리는 북쪽으로 놓고 자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이 죽어 묻히는 곳을 북망산천이라고 하는데 그게 북쪽이라서 그쪽으로 머리를 뉘이면 생기가 빠진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에겐 그게 되게 무서운 말이었나 보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걸 보면 말이다.

근데 또 인테리어 풍수를 찾아보니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한 대로 북쪽에 머리맡을 두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상의학의 체질에 따라 머리를 놓는 방향이 달라지며, 북쪽이 좋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결국 뭐가 맞고 뭐가 틀렸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무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소나무를 '마당에 심으면 가장 좋은 나무'라고 하는 반면, 누군가는 '소나무를 마당에 심으면 남자의 정기가 약해진다'라고 한다. 그리고 뭐 우물가에 심으면 우환이 끊이질 않는다거나, 마당에 심으면 안 좋은 과실수 등 진위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수백 개였다.


풍수를 공부? 하다 보면 나름 과학적이다 느끼는 지점들도 분명 있다. 집의 크기 이상으로 자라는 몇몇 나무를 절대 심지 말라고 하던데, 생각해 보면 나무가 집보다 커져 집에 그늘을 드리우게 한다면, 당연히 집은 습기 차서 눅눅해질 것이다.

몇몇 과실수도 마찬가지. 벌레가 많이 생기다 보니 집에까지 그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다. 벌레가 들어오면 숙면을 취하는데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이 잠을 잘 못 자면 일상이나 건강에서 바로바로 신호가 나타나니 말이다. 귀신이니 우환이니 표현했지만 의외로 논리적으로 해석 가능한게 또한 풍수이지 싶다.


현관에는 풍경(풍탁)을 달았다. 풍경이야말로 이견이 없는 효과를 지닌 대표 풍수 아이템이다. 우리나라의 절에선 무조건 발견할 수 있다. 풍경은 대부분 물고기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는 '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풍수적으론 '물에 사는 물고기가 화기를 잡는다'의 의미도 있다. 우리 집도 목조주택이다 보니 화기를 잡고 싶었고, 현관에 물고기 모양의 풍경을 달았다. 마음이 놓였다(물론 주택화재보험도 가입했다).




모든 사물엔 이름이 있어야 하는 법. 예전에 일본 만화 중 ‘xxx홀릭’ 이란게 있었는데 여기서도 사물의 이름이 갖는 중요성이 나왔다. 모든건 이름이 있어야 불릴 수 있다. 불린다는건 결국 정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생기 있으려면 좋은 이름을 가져야 했다.


집은 크게 전, 당, 합, 각, 재, 헌, 루, 정(殿, 堂, 閤, 閣, 齋, 軒, 樓, 亭) 중 하나로 끝나면 된다. 전은 주로 왕족이 거주하는 공간이어서 우리 집에 붙이기엔 과하다 싶었다(너무 강한 이름도 좋지 않다는 미신이 있다).

당이나 합, 각 같은건 휴식 공간이라기보단 업무를 보는 생활 공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용한게 '재'였다.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 아내는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집이길 바랐다. 그렇게 우리 집의 이름은 웃을 소(笑) 행복 복(福) 집 재(齋)의 소복재가 되었다.



이렇게 외부의 기운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해 줄 우리의 집이 (풍수적으로)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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