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서울을 떠난다

20.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성공한 아내

by 씨티훈

그동안 좋은 일이 있었다. 아내가 2년 만에 중등임용시험을 합격한 것.


사실 23년 한 해 동안 아내는 일을 하지 않고 생애 처음으로 임용 시험에 도전했다. 임용이라는게 쉽지 않은 것은 잘 알지만, 아내의 과목이 최근 핫한 과목이기도 했고, 여기가 서울이나 수도권도 아니니 충분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육아의 비중이 아내에게서 나에게로 조금 더 옮겨졌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역시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아이가 태어나면 강제로 단축근무가 부여된다. 매일 2시간씩. 단축근무는 아이가 만 9세가 되는 108개월까지 의무 부여이며, 이후 추가로 만 12세까지 730일간 매일 2시간씩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등원과 하원을 모두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아내가 보다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아내도 오랜만에 머리를 쓰는 쓰는 거다 보니 임용 공부를 시작한 첫해에는 독서실까지 끊어서 전력투구를 했다. 아침에 내가 출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내도 곧이어 나와 바로 독서실로 직행했다.


오후에 내가 퇴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저녁먹이고 씻기고 놀다 재우고 나면 열 시쯤 아내가 집에 왔다. 평일 저녁 종종 아이와 함께 아내의 독서실 앞에 가서 저녁만 먹고 헤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저녁은 아이와 나 단 둘이 해결했다.


어린아이와 집에서만 노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난 아이에게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선 최대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기에 평일에도 퇴근하면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스타필드에 가서 돌아다니다 온다던지, 그곳의 찜질방에 놀러 가서 목욕을 한다던지, 심지어 필 받으면 꽤나 자주 한 시간 십분 거리의 에버랜드에 오후권을 끊고 가서 불꽃놀이까지 야무지게 챙겨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일정 부분 자기 뽕도 차 있었던 것 같다. 아, 난 이렇게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시대의 아빠야 같은 나르시시즘 가득한 모습. 뭐 힘든 현실을 도피하고자 만들어낸 포장일 수도 있겠지만.


주말에도 눈뜨면 아이와 둘이 근교로 놀러 갔다. 대신 주말 저녁은 아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독서실에서 세상과 단절한 아내이기에, 내 회사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뉴스 기사에서 접한 사건 사고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첫해엔 한 문제도 안 되는 점수 차로 떨어졌다. 나도 속상했지만 아내도 많이 울었다.


이듬해인 24년에는 아내가 기간제를 하며 공부를 병행했다. 일 하며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아내는 곧잘 했다. 대신 공부 패턴은 약간 바꿨다. 내가 아이를 픽업하고 오는 사이에 아내가 퇴근 후 저녁준비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아이와 잠깐 놀다 씻고 재운 후에 그때부터 서재에서 자정까지 공부했다.


24년 11월 시험 당일, 아내는 처음 보는 유형의 문제가 너무 많았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근데 난 믿지 않았다. 그동안 아내가 들인 노력과 실력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임용수험생들이 모이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내의 과목은 이미 난리가 나있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커트라인이 과락 점수라는 추측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내 예상대로 아내 과목의 컷 점수는 매우 낮았으며, 과락이 발생해서 1.5배수를 못뽑은 지역도 있었다. 결국 아내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23년에 봤던 시험에서 컷을 겨우 넘어 합격했다면, 아내의 발령 학교가 지금 사는 곳에서 매우 멀었을 것이다. 하지만 24년 시험에서 꽤나 높은 점수로 합격했기에, 25년 2월에 발령받은 아내의 첫 학교는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가 걸리는, 매우 가까운 곳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택살이를 즐길 때가 되었다. 내년엔 아내와 나 동시에 육아휴직도 할 예정인데, 앞으로의 글은 주택살이와 더불어 육아휴직 위주의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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