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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Sep 05. 2023

집에 안 가는 걸까. 못 가는 걸까.

교육청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도대체 왜 장학사들은 매일 야근을 할까.

야근(夜勤)이란 무엇인가


학교에 있을 때, 장학사들의 '살인적인' 업무량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장학사될 줄 몰라서 그들의 생활상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교직생활을 통틀어도 초과근무 확인대장에 기록을 할만한 일이 수학여행 인솔교사로 출장을 갔을 때 다른 교사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학교에 근무했을 때는 다음 학교로 이동할 때까지 초과근무 확인을 위한 지문인식 시스템에 지문등록 자체를 안 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내가 교육청에 들어와 일을 하는 장학사가 되었다. 교육전문직 전직에 도전할 때, 아내의 허락을 받을 때 가장 먼저 했던 말도 "장학사 되면 야근이 많다는데 지원해도 괜찮을까?"였던 기억이 있다. 장학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는 것은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들어와서 생활해보니, 실제로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끊임없이 연출되는 것이 일상이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장학사들이 야근을 자주 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야근의 이유는 '해결해야 할 일, 해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야근(夜勤) - 퇴근 시간이 지나 밤늦게까지 하는 근무. [표준국어대사전]


야근이란 용어는 공무원의 복무상 용어에는 없는 말이다. 문서 상 존재하는 정식 용어는 '초과근무' 또는 '시간 외 근무'다. 내 경우에는 야근보다는 '새벽 시간 근무'를 더 많이 하고 있으니, 야근이란 표현이 적절하지 않기도 하다. 그렇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야근(일과시간 후 초과근무) 보다는 일과시간 전 초과근무를 더 많이 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일을 해 놓으면, 결과적으로 초과근무시간은 같을지라도 퇴근시간에 퇴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삼모사에 불과한 일이지만, 퇴근시간에 퇴근을 하면 기분이라도 좋으니 이런 생활을 반복했을 뿐이다. 원래 새벽형 인간이었지만, 아침에 차를 한 잔 마시며 여유있게 사색을 하는 것과 기한을 맞추기 위해 압박감 속에 미친듯이 일을 하는 것은 분명 달랐다. 아무리 멘탈 관리를 하려 해도,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듯 하다.




노동요를 부르며 야근을 하는 세대, 'Why Not?'을 말하는 세대


처음 장학사가 되어 근무를 했던 부서에서는 부서장님부터 모두가 당연히 야근을 하는 분위기였다. 교육청 생활이 시작이었기에, 다른 부서에서는 근무를 해 본적이 없기에 모두가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리 부서 안에서도 교육전문직(장학사, 장학관)의 삶과 일반직의 삶은 달랐다. 장학사의 직무가 워낙 특수해서 차이가 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이 당연한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기에 이 세계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로 다음으로 근무했던 부서에서는 부서장님의 목표가 '이순신 퇴근(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겠다는...'이셨기에, 똑같이 야근을 하더라도 분위기가 다르기는 했었다. 40대인 나도(학교라는 헐거운 특수한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른바 MZ세대라면 가만히 견뎌내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778987


일반적인 회사에는 근무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신문지상으로 만나는 일반 회사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고 하니 부러운 측면이 있다. 물론, 교육전문직원의 세계도 코로나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변한 것은 맞다. 사회적인 분위기 전환이 분명한 흐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조직에서 직위가 올라갈수록 고민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간부들의 경우에 자신들이 겪어왔던 것처럼 중관 관리자급 직원에게 물리적으로 무리한 업무지시를 하는 경향이 있고, 중간관리자급 직원은 부하직원들이 상급자나 과거의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업무지시를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노동요를 부르며 승화시키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들의 고민은 어디에 하소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더 슬프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지금 이 시대 공무원 조직의 팀장급 이상 중간관리자들은 참 유연하게 조직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s://www.mk.co.kr/news/society/10534197


물론, 지금도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과거 조직에 헌신하던 직원들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어느 조직에나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나부터도 내가 속한 조직 속에서의 나와 조직 밖에서의 나는 분명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삼분의 일을 보내는 직장보다는 나머지 삼분의 이를 보내는(비록 대부분의 시간이 자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곳에서의 내가 더 본질적인 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학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사고방식 중 하나도 바로 이 부분이다. 과거에는 더 경제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가성비가 좋은 것은 무엇인지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제는 그 무엇보다 시간이 가장 소중하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안을 빠르게 선택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참 소중한 가치가 분명하다. 특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6090467003538




장학사는 왜 야근을 하는가


장학사는 '교육전문직원'이라는 직렬의 공무원이다. 공무원이라 함은 주어진 행정업무가 있는데, 교육청 장학사의 행정업무는 일반적으로 '정책사업'과 관련된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보다 나은 방향은 무엇인지 연구하여 법률과 지침에 따라 이를 시행하고 개선해 나간다면 아름다운 정책사업의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아름답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본질적인 업무를 고민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책 사업(政策事業) - 정부나 정치 단체, 개인 따위가 정치적인 목적을 실현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침이나 수단과 관련된 사업.


일반적인 직장인처럼 장학사들도 당연히 주업무가 있고, 자신의 일을 더 잘 하고 싶어한다. 매일 저녁 퇴근할 때면 내일의 일정을 확인하고 내일 할 일을 구상하며, 출근할 때도 오늘의 계획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하지만, 업무 시작과 동시에 걸려오기 시작하는 교사들의 문의전화, 학부모들의 민원과 하소연 전화, 국민신문고 민원 접수 알림 메시지, 관련 기관과 부서의 업무 관련 협조 요청, 갑자기 찾아와서 협력을 제안하는 단체와 회사들, 궁금한 것이 참 많은 언론, 그리고 의원 요구자료 등이 끊임없이 치고들어오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되는 날은 거의 없다. 출장과 회의 등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진득하니 고민하고 일을 할 시간은 평화가 찾아오는 저녁시간 또는 새벽시간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국민신문고의 굴레


학교의 담임교사들은 담임 반 학생들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일들을 처리하게 된다. 장학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담임학교의 거의 모든 민원을 처리하게 된다. 서울 중등의 경우 해당 관할 지역의 학교 수에 따라 적게는 4~5개에서 많게는 6~7개의 학교를 장학사 한 명이 담당하고 있다. 결국, 학교별 사안은 1년 내내 거의 매일같이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장학사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어디 가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기에, 하루의 일과를 모두 디테일하게 평균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으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쨌든,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맡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 공부하며 마침내 해내는 사람들이라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것을 인력부족이라는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풀어내기 위해 인력을 더 배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규적인 일보다는 상규적이지 않은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업무의 특수성이 있기에 이 문제는 수십년 동안 풀어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을 교육한다는 것은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인 것 같지만, 순간순간마다 다르고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같은 교육을 받아도 예상하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 단순 행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현안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장학사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뽑아서 교육청에 둔 것 같다.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하냐는 가족의 물음에, 퇴근시간 5분 전까지도 확실하게 답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려워하는 교사들도 많지 않고, 생각보다도 훨씬 더 권위가 없는 사람들이 바로 장학사다. 하지만, 학부모의 머리 속에서는 아직도 학교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호소하고 자신의 요구를 학교에 관철시켜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학교에 대한 불만을 해결해 줄 전지전능한 존재 혹은 마지막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최후의 존재가 해당 학교의 담임 장학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부모에게는 권위가 없을 지라도, 학교에는 권위를 가지고 압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수 많은 민원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청, 특히 장학사에게 전화를 하는 학부모들의 민원이란 그 폭도 참 넓고 깊이도 참 가지가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처럼,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무리 많아도 말을 아끼며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바로 장학사의 일상이다. 그렇게 또 하루의 초과근무가 시작되고 내일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에 간다.


교육청에 들어와서 첫 3개월 여의 시간동안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거의 10kg의 체중이 빠졌었다. 육체적인 스트레스 말고 심리적인 스트레스로도 체중이 감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때 처음 알았다. 당시의 나는 교육전문직 세계에서의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 하나로, 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우스운 일인데, 당시에는 정말 심각한 고민 끝에 내린 큰 결심이었다. 그것은 바로, '퇴근시간에 퇴근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퇴근시간에 퇴근한다고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 결심을 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큰 용기를 내어 부서장님께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하며 밝게 인사하고 뒤를 생각하지 않고 집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던 근무지와 서울 근교 도시에 살고있던 거주지 덕분에 퇴근이 몰리는 시간의 귀가길은 90~120분 정도가 소요되는 여행길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던 것 같다. 라디오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멍때리던 시간의 행복감, 바로 이 맛이었다. 물론, 일이 워낙 많아서 매일 퇴근시간 퇴근을 실행하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2~3일 이렇게 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시간에 퇴근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고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때로는,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퇴근 시간에 집으로 향했다. 긴 시간의 퇴근길 끝에 도착한 집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 행복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것이 행복한 것이었는지, 사무실을 나선다는 것이 행복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퇴근한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학사 생활이 만 5년차에 접어드는 지금도, 퇴근의 기쁨은 여전하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바가지를 긇히더라도, 아이들에게 시달리더라도,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퇴근은 즐겁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칼퇴'를 하지 않고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더라도 즐겁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아침이 되면 출근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출근하면 집에 가고 싶어지고 퇴근하면 출근하고 싶어진다. 퇴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도 감사하다. 아마도, 내가 꼰대로서 성체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섬뜩해지기도 하지만...오늘도 나는 퇴근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출근한다. 지금도 늦은 시간에 동료직원들과 함께 노동요로 시원하게 "!@#$%^&*(!!!"를 외치며 스트레스를 풀어본다. 모든 직장인, 모든 교육전문직원의 안녕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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