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의진 Jan 11. 2023

영감을 주는 삶, 동기부여가 되는 삶. 부담스러운 배역

좋은 영향은 못 주더라도,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축구를 잘 하고 싶은데, 평범하고 싶어요


축구선수 박지성이 십수년 전 공중파 TV가 제작한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했던 이야기다. '그렇지!!' 나의 마음과 똑같았다. 무엇인가를 잘 하고는 싶지만 단지 그 뿐인, 그 분야의 1인자가 되어 모두의 주목을 받고야 말겠다는 그런 마음은 없는...내가 박지성과 같은 또래라서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항상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이 아닌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동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090415147300005




영감을 주다. 동기를 부여하다.


최근 들어, 나의 삶을 가끔씩 돌아보게 된다. 아직 젊디젊은 나이지만, 자녀들을 키우면서 내가 이 녀석들 나이 쯤에는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행동을 했었는지 떠올려보게 되는 것 같다. 가족 안에서 뿐만이 아니다.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특히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게 될 때면 학창시절에 나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었다. 지금도 내가 하는 일과 관계된 사람들을 만날 때, 나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교사들을 만날 때,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예전에 어땠는지 떠올려보면서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는 체육교육을 전공했고, 서울의 공립 중학교 교사였으며, 지금은 교육청에서 서울의 교육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혼자서 노력하여 성취한 것은 거의 없다. 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영향력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 '아무리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느끼기에 '하고 싶은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더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생각은 없을 것이다. 깊이있게 고민을 하면서 결정한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한 순간에 마음이 움직여 시도한 일이 잘 되기도 했었다.


한 가지 일관된 것이 있다면, 일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과 배우고 싶은 일을 찾아 다니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지금까지의 삶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체육교육을 전공하겠다고 결정했을 때도 하고 싶어서 도전한 것이고, '꿈이 겨우 교사?'라는 시선(지금은 다르지만, 당시만 해도 지배적인 시각이었다고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게 하고 싶었을까를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기억해보려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있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누구네 형이 어느 대학교를 갔다는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부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체육교육과로 진학하여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누가 어느 대학교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그 사람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었다. 막연하게 준비하던 고3 시절, 내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왔던 특정 입시학원 출신의 가고 싶던 대학교에 재학 중인 선배라는 사람. 그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도 왜인지 그 학원에 다녀야 그 선배처럼 합격할 수는 있지 않을까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절에도 비슷했다. 먼저 합격했던 사람들 현직에 나가있는 사람들이면 한 없이 대단해 보였다. 교직에 들어 온 이후에는 학생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선배님들이 부러웠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한 태도로 학생을 능수능란하게 지도하는 선배님들이 대단해 보였다.


지금같으면 부끄러워할만도 한데 당시만 해도 일면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싶으면 기회가 될 때마다 무턱대고 찾아가거나 그 사람들의 흔적을 간접적으로라도 접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쩌다 기회가 올 때면 거부하지 않고 함께하는 자리 속에서 무엇인가 배우고 싶다는 표현도 적극적으로 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달려들었을 때, 그 때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겸연쩍은 모습으로 웃어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 녀석은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부담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을지는 그 때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가 멋진 사람들을 만나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즐거움 뿐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단지 내가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이 되어 보니 그 분들의 겸연쩍은 표정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체육교육과에 합격하고 보니 특별한 합격의 비결 같은 것은 없었다. 남들하는대로 열심히 노력을 했을 뿐이고,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임용고사에 합격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대단한 과정도 없었고 대단한 영광도 없었다. 내가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을 보면서 그랬듯이, 누군가는 나를 대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없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의 부끄러운 본 모습을 들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멀리 도망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헐리우드 영화나 해외 뉴스 속의 사람들 인터뷰를 보면 어떤 훌륭한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그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영감(靈感)'이라는 단어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무엇인가 영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사용하기는 어려운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외국 사람들의 인터뷰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표현할 때는 자주 사용되는 것이 신기한 단어인 것 같다. 영어의 'inspire'를 '영감을 주다'로 번역하는 듯한데, 검색해보니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주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되는 것 같다. 'motivation', '동기부여(動機附與)'라는 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은 그 말 만으로도 어떤 사람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이 사람은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나면,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친근하게 다가가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를 잘 봤습니다.', '~할 때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할 때 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를 참고하여 ~를 할 수 있었습니다.' 등의 멘트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표현이지만, 막상 내가 이런 표현의 당사자가 되면 그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어진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밑천이 드러나기 전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기대하는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순간까지만 있다가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문화, 관료문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어가면서 이런 상황이 점점 더 많아져서 부담스럽다. 그런데 또, 본질이 꼰대질인 일에 종사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상호간의 립서비스 향연이 이어지는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교육청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장학사님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장학사가 되고 싶다.'는 영감을 주는 존재가 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큰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는 존재이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에는 창피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진짜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다른 분들을 소개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를 왜?


장학사. 정말 미지의 영역이다. 그 되기 어렵다는 판사의 삶, 검사의 삶, 변호사의 삶, 의사의 삶, 대기업 회장님의 삶, 대학 교수님의 삶 등도 TV를 틀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어떤 이미지라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장학사의 삶은 정말 베일에 꽁꽁 싸여져 있다. 장학사의 삶과 가장 접점이 크다는 교사들도 실제로 장학사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깊이 있게 알기 어렵다. 단지, 무엇인가 엄청나게 일이 많고 바쁘게 사는 것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부자가 되어보니,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학사가 하는 일 중에 외부에 말을 할 수 없는 일(민원처리, 심의, 심사, 갈등조정, 장학 등)의 늪에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0여년을 교사로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쏟아지는 업무와 행정행위들을 장시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처음부터 이 일을 했다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교사들은 우리나라 그 어떤 조직과도 다른 조금은 특별한 조직문화, 즉 자유롭게 판단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던 조직문화 속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 이랬던 교사들이 적응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은 적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내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브런치에 주제넘게 장학사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글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글을 쓰며 스스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글쓰기는 내가 이 세계에 적응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십수년, 유튜브 채널 십수년, 브런치 몇 년 등을 하며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과 내가 했던 말들이 글과 영상으로 온라인에 남아있다. 처음에는 내가 언제 어디서나 생각나면 내가 무슨 헛소리를 했나 살펴보고 반성하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실제로 내가 쓴 글과 영상을 내가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온라인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인터넷 바다에서 흘러흘러 내가 남긴 흔적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이메일,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출판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 등이 이런 방식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영감을 받아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도모하기 위해 나를 도구적 관점에서 찾아오기도 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누군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고 참 부담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나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을까. 내가 장학사이기 때문일까, 상대적으로 선배이기 때문일까,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많아서일까, 어디선가 내가 했던 강의를 접해서일까,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봐도 내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유명 강사들처럼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딱 보면 빠져드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옷을 잘 입는 분위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체육교육을 수십년간 연구했거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중학교 체육 교사로 근무하면서는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보다 내가 힘도 세고, 빠르고, 스포츠 수행능력도 좋고, 키도 크고, 근육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 적도 있다. 사실, 체육 교사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 맞기에, 노쇠화되는 육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체육 교사들만큼 멋지게 늙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저주를 받으며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산다면, 참 어렵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삶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참 복을 많이 받은 삶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교사가 되고 싶어했고, 교사가 되었다. 대학교 강단에 서보고 싶어했고, 몇 학기 동안아지만 정규 수업을 맡아서 예비교사들을 지도해보기도 했었다. 교사시절 장학자료를 만들어보고 싶어했고, 장학자료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었다. ISBN 찍힌 출판물에 내가 쓴 글이 실려봤으면 했고, 책 몇 권에 이름과 글이 실려보기도 했었다. 근무하고 싶었던 학교에서 함께 하고 싶었던 교사들과 함께 근무하기도 했었다. 교육청에 들어와서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부족한 나를 예뻐해주시는 상관들 덕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많은 실패와 실망감도 있었을텐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기억이 아름답게 보정되기 마련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지금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기한 일이지만), 대단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나라는 존재를 보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립서비스로라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듯 느껴진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잠시나마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배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의 평소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되는 내 모습을 자각할 때면 '나도 이제 장학사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특히 나를 보면서 장학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이들이 기대하는 시나리오를 빨리 예측하여 거기에 맞는 배역을 연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모습, 나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장학사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군 시절 소대장과 훈육관으로서 훈련병들을 독려하기 위하여 '하고 싶은 행동을 하지 말고, 주어진 대본을 이해하고 그 역할을 잘 연기해라'라고 다그쳤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한 동경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가 나서 당황했던 경험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교사도 교사가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현실의 차이는 크고, 장학사도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행복의 가치와 우선순위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긍정적인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 나를 왜 관심있게 보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공감하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 때문에 이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욕을 먹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늘도 민원전화 상담이 끝나면 수화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마음 속으로 험한 말을 쏟아내보지만, 겉으로나마 침착하고 여유있게 농담을 하며 다음 일을 이어가려 해본다.





이전 07화 디지털 기반 수업의 방향과 기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