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의진 Jun 19. 2021

교육청은 무슨 일을 하는가? #2 교육청이 원하는 교사

나는 내가 좋아하는 교사들에게 장학사가 되라고 권할 수 있는가?

교육공무원법 별표1 '교육전문직원의 자격기준'


위 표는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교육전문직원의 자격기준이다. 이 기준은 교육부의 교육전문직원 선발 기준이며, 교육공무원법 제58조에 따라 교육감 소속 교육전문직원은 교육감이 임용한다. 각 시도교육청별로 교육전문직원의 자격은 경력의 기간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자격을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장학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이렇게 어려운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선발하는 것일까? 교육전문직원 인사 담당자도 아닌 일개 장학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교육전문직 합격자 발표일, 교육청의 풍경


2021년 6월 17일 목요일. 서울특별시교육청의 '2021 중등 교육전문직원 임용후보자 선발 전형 최종 합격자'가 공고되었다. 해 마다 이 날이 되면, 명단을 살펴보며 누가 교육청에 들어와 함께 일하게 될지를 살펴보게 된다.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게 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되지만, 기대했던 이름이 없을 때는 묘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기 마련이다. 티를 내지 않는 연습을 계속 해 왔기에 옆에서 보면 티가 나지 않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교육전문직원들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교육전문직원으로서 좋은 분들이 교육청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소식은 너무나도 반갑다. 어떤 선생님이 너무나도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서울 교육을 위해 이 분이 역량을 발휘하신다는 상상을 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서울특별시교육청 소속의 교육전문직원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지인의 교육전문직원 합격 소식을 온전하게 축하만 할 수는 없다. 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으로 '전직'을 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교사가 학교를 옮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삶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전문직원이라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 맞지만, 이전에 적었던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유독 그 고민과 시행착오의 정도가 심했다. 따라서, 나름 잘 아는 지인일수록 그 사람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내가 아는 그 분의 삶을 교육전문직원의 삶에 대입하여 생각해보며 걱정스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매년 그렇듯이, 이번 합격자 명단을 살펴보면서도 기쁨과 아쉬움, 그리고 걱정이 버무려지는 바로 그 상황이 마치 데자뷰처럼 이어졌다.




어떤 교사가 교육전문직원이 되어야 할까?


나는 지금도 내가 어떻게 장학사 시험에 합격했는지 잘 모르겠다. 발령을 늦게 받은 것을 볼 때, 턱걸이로 합격했구나하고 추측할 뿐이다. 나같은 교사가 교육전문직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교육청 역시 학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특성의 사람들이 공존할 때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력도 일천하고 경험도 많지 않은 사람인지라, 과거에 어떤 교사를 장학사로 뽑고자 했었는지도 잘 모른다. 다만, 주관적으로 최근의 분위기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재작년 여름 임용후보자 연수 때, 한 강사분께서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었다.


지금 이 순간 학교 현장에서 가장 잘 가르치는 교사, 동료 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사를 장학사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교사들을 장학사로 뽑기 위하여 매년 조금씩이나마 교육전문직원 선발 방법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선발된 여러분의 역량을 믿습니다.


물론, 눈 앞에 앉아 있는 우리가 듣고 기분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강사님의 말씀처럼 이후로도 선발시험의 방법은 분명 조금씩 변화하였다. 통찰력이 부족하여 잘은 모르겠지만,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고 있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어떤 교사를 뽑고 싶은가의 고민에 대한 교육청 안에서의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분위기를 잘 모르는 후배가 감히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의 시각에서 ‘장학사’라고 하면 공문 잘 만드는 교사, 큰 예산의 목적사업을 척척 해내는 교사, 연구보고서를 내실있게 잘 쓰던 교사에게 장학사가 되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산업화 시절, 학교가 안정적으로 엄선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이렇게 선발된 장학사가 교육청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당시의 장학사 시험에도,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고민이 선발 전형에 녹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의 모습과 내용이 빠르게 변화하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느 조직, 어느 분야에서나 유연한 사고와 정확하고 과감한 판단이 필요한 시대다. 안정성과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조직, 교육청에서도 유연한 사고와 몇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결국, 교사의 본질적인 역량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즉, 수업을 교육과정을 교실을 학부모를 학교를 가장 잘 아는 교사가 장학사가 되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학교에 있는 학생들이 펼쳐낼 미래사회의 그림을, 우리는 감히 확언할 수 없다. 그래서 교육의 흐름과 방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연구하며 가르치는 교사가 이러한 역량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으며, 이러한 교사를 장학사로 선발하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교사들이 교육청으로 간다면, 학교에는 좋지 않는 교사들만 남는다는 말인가?


나의 장학사 전직 소식을 들은 한 수석 교사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의 말씀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해 주셨었다.


학교현장에서 역량있는 후배교사를 만나서 함께 연구하며 기대감이 커져갈 때 쯤 되면, 교육청에서 낚아채 버리는 일이 계속 반복되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 어떤 말보다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수석 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수업의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 때문에 교사로서 후회는 남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기 싫어 장학사 시험을 본 교사라는 비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공인된 까임방지권을 부여받은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장학사 생활 2년을 해 보니, 수석 교사님이 하셨던 말씀과는 반대편의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수업을 잘 하고 학생들을 잘 교육하는 최고의 수업 전문가가 장학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2020년 갑작스러운 원격수업의 국면에서 이런 생각이 커졌다. 서울은 넓고 훌륭한 교사는 많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도 끊임 없이 좋은 교사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역량있는 교사가 교육청에 들어와 정책의 기획과 실천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직접 수업을 하는 것만큼이나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훌륭한 교사가 학교 현장을 떠나 교육청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학교 교육력의 저하로 이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전문직원 선발과정, 교직생활을 돌아보는 참회의 시간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의 교육전문직원 임용후보자 선발 전형은 '공개 경쟁'이다. 지원자격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이 소속된 학교와 기관에 공문으로 세부적인 계획들이 안내되며, 이에 따라 교사들이 선발전형에 지원하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 시도교육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들었기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정하여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경우 매년 말 정도에 다음 연도 교육전문직원 선발을 어떻게 하겠다는 아주 간단한 예고를 한다. 지원자격이 변경된다던지, 시험방법이나 배점이 변경된다던지 할 때에 공개적으로 예고를 하는 것이다. 물론, 아주 큰 변화가 있을 때는 몇 년 전에 미리 예고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예고된 내용은 매년 봄, 학년도가 시작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쯤에 구체적인 세부계획이 확정되어 학교로 공문이 도착한다. 누군가에게는 애타게 기다렸던 공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공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지원을 하고 선발 전형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2021년 전문직 선발은 크게 1차 시험과 2차 시험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차 합격자라고 함은, 서류전형과 교직실무 및 전문성을 종합하여 지원자 중 1차 단계에 합격한 교사들을 말한다. 1차 합격자 명단은 공문으로 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 모든 학교와 기관에 공개가 되는데, 모두가 명단을 확인하여 좋은 의미이던 나쁜 의미이던 의견을 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공개한 명단을 보고 누군가 해당 교사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다면, 2차 시험 단계에서 반영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정확한 제도적 검증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물론, 교사 개인에게는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겠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교육전문직원 합격자 발표 공문. 1차 합격자 발표는 긴장감을 주는 출사표처럼 느껴지고, 최종 합격자 발표는 내가 왔다는 도전장처럼 느껴진다.


사실, 1차 합격자가 발표되고 난 이후의 시간은 당사자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말을 할 수 없는 고뇌의 시간이다. 1차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지인들이 축하한다고 응원한다고 연락을 해 오지만, 기쁘다기 보다는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그렇고, 나를 알고 있는 과거에 함께 했던 동료교사들 모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차 합격자 안내 공문은 '교사 000은 장학사가 되고 싶어한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공문이다. 교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판단에서는 개인으로서의 판단 보다는, 공직자로서의 판단을 내리는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직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교사들은 내 동료 교사 000의 입장 보다는, 서울교육의 입장에서 000이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확률이 크다. 그동안의 교직 생활동안 갈등 없이, 모두와 함께 잘 지내왔고 표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 역시 그랬다. 1차 합격자가 발표된 이후에 2차 시험의 면접일을 지나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까지, 나의 교직생활을 처음부터 되돌아보는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것 말고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막말로, 잘 좀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당장,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잘 좀 부탁드린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나와 관련된 좋은 이야기만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누가 의견을 제출하고, 누구에게 의견을 묻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몇 달, 몇 년의 시간만으로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평소에 교사로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장학사가 되려면 20년 동안 준비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게 된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시킨다고 교육전문직 선발전형에 응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기야 어쨌든 자발성을 전제로 지원이 이루어지며, 자신이 직접 하고 싶어 지원한 일이기에 합격 소식은 기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짧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길다. 아마, 이번 합격자 명단에 포함된 교사들의 마음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이야기만 해 주던 선배 장학사가, 갑자기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이야기를 시작하여 두려움의 크기가 더욱 커져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미리 걱정할 일도 아니고 미리 걱정한다고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장학사의 일이라는 것이 업무상 비밀이 너무나도 많기에, 발령 전에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거의 없기 마련이다. 결국, 선배 장학사의 입장에서는 업무적인 측면보다는 사무실 생활과 분위기,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줄 수밖에 없다.


사실, 대부분의 교육전문직원은 바쁘다. 바쁘지 않아 보인다면, 업무와 관련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이 사무실의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자 또는 신규 장학사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조언을 해주려다 보면, 무엇인가 특별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걱정을 더 해주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싶다.


교육청도 학교처럼 사람 사는 곳이고, 장학사도 교사였던 사람입니다. 너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저같은 사람도 2년 동안 잘 살아냈습니다. 환영합니다.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교육전문직 선발 전형에 지원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교육청 생활도 벌써 2년이 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체성 고민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소소하고 현실적인 고민까지 참 많은 고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나로 인해서 학교가 교사가 학생이 학부모가 행복해 졌으면 하는 바람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합격자 명단에 너무나도 반가운 이름이 있어, 횡설수설 정신없이 갑자기 글을 적어보았다. 함께하게 된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그들로 인해서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전 09화 교육청은 무슨 일을 하는가? #1 교육청의 조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