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들의 생각 들여다보기
*본문의 내용은 어디까지는 저의 주관적인 이야기입니다. 장학사들의 일반적인 생각 또는 교육청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사가 장학사로 전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전문직원 임용후보자 선발전형’에 응시하여 합격해야 한다. 즉, 가만히 있는 사람을 장학사로 발령 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발전형 과정에 참여한 사람 중에 선발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장학사가 되고 싶다는 개인의 의사를 공식적인 행정 절차를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다. 물론, 이 단계까지 도달하기 전에 많은 고민과 여러가지 동기부여 요인들이 있어야 한다. 모든 교사들이 개인의 서사를 가지고 있듯이, 장학사들 역시 개인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살아온 길이 모두 다르기에 장학사가 되고자 했던 동기 역시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전직의 동기를 유형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선배 장학사들이 왜 장학사가 되고 싶었했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장학사를 꿈꾸는 교사들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직접 해보고 싶다.
예전 그러니까 선배님들 시대에 전직을 도전하던 교사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는 ‘직접 해 보고 싶다!!’는 동기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왜 이렇게 밖에 못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내가 직접 해볼까?’ 내 전직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것이 아주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것은 교육청에 들어온 직후에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지만.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체육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장학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학교체육 담당 장학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편협한 동기였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의 정책을 직접 다루어보고 싶다는 동기가 결정적이었다.
초등 교육전문직원의 경우 일반적인 초등 교육과정이 그렇듯이 특정 교과나 특정 영역을 중심으로 선발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교육전문직원을 영역 구분 없이 선발하여, 여러가지 업무를 두루두루 맡아서 하도록 배치한다. 장학사의 커리어 역시 특정 업무 하나의 전문가로서 계속 근무하기보다는 여러가지 업무를 두루두룩 경험하며 종합적인 능력을 쌓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중등이라서 내부적인 상황이나 방향성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그렇다. 구조적으로 초등의 경우에는 관심이 있는 특정 분야나 특정 정책과 관련하여 일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서울로 한정하고 그 안에서도 내 경험에만 근거하여 감히 이야기하자면, 중등 교육전문직원의 경우에는 교과영역별로, 전문적인 업무 영역별로 구분하여 선발하기에 해당 영역의 정책을 맡아서 2~3년 이상 전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본청이나 직속기관이 아닌 교육지원청에 근무하는 장학사의 입장에서는 업무꼭지가 많고 깊이가 깊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교육지원청에서도 업무를 맡길 때 장학사의 전공은 가장 우선순위로 고려되는 요인이다. 나처럼 학교체육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쌓고 싶어 고민하던 사람이라면, 교육청에 들어와서도 해당 분야의 업무를 맡아서 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생각처럼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 역시 야심차게 도전하여 합격하고 교육청에 들어왔지만, 공무원 사회의 특성 상 내 뜻대로만 일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전문직 초기 반 년은 학교체육 업무를 맡았지만, 아는 것도 없고 교육청의 시스템을 이해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이후 1년의 시간 동안은 학교체육 업무가 아닌 업무를 맡아서 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관심있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내가 맡고 있던 업무인 학생 생활교육 차원에서 체육활동과 스포츠를 방법으로 적용해 보기도 했다. 언젠가 돌아가서 맡게 될 체육업무와 관련해서도 기회가 되는대로 학교 현장의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웃대기를 계속했다. 이 때의 경험들이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업무에도 슬쩍슬쩍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도 한다.
내 경우에서 보듯이, 교사가 자신이 관심이 있던 분야의 정책 업무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직 도전의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주변의 장학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비록 조심스러워 이야기를 쉽게 하지는 않더라도 각자가 ‘하고 싶은 일’,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의 나처럼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을 때는, 업무의 양이 많고 민원이 많더라도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마음이 여러차례 왔다갔다 하기는 하지만, 학교체육 업무를 담당해보고 싶다는 전직 동기가 실현된 지금의 내 일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다. 비슷한 상황의 장학사들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관원으로 성공하고 싶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천년 전에 이미 ‘과거’라는 국가의 관료를 선발하는 체계를 정착시킨 이래,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대학입학 시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의 공개 경쟁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것을 사회의 근간으로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목적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인재 선발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 위에는 놓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나라다.
비슷한 맥락에서 ‘장학사’라는 직위를 얻기 위한 공개 경쟁 시험을 통과한다는 것 그 자체가 성취동기로 작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겪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겠지만, 학창 시절의 기억과 과거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장학사라는 존재가 교사보다는 더 크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의 역사에 기반한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경제적인 성공보다도, 오히려 관원으로서의 성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러한 점들이 융합되면 순수한 의미에서 ‘장학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합격 이후 발령을 기다리는 교사들, 전직 직후 허니문 기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장학사가 된 이후에 무엇이 제일 좋았나요?”라고 물어보고는 한다. 이 질문에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또는 “배우자가 정말 좋아하더라구요.”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부모님이나 배우자 등이 좋아했다는 포인트가 바로 관원으로서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멋진 부모로 기억되고 싶어서’ 전직에 도전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승진을 하고 싶다.
2019년 6월, 서울특별시교육청 중등 교육전문직원 선발전형 합격자 명단이 서울의 모든 학교에 시행되었다.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한 선배 교사 중 어떤 분께서 나에게 “교장 선발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요.”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장학사가 되고자 했던 동기는 아니었지만, 그 선배교사의 교직 인생에서 전직 시험은 ‘장학사로 전직을 한다.’는 것보다 ‘나중에 교장으로 발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교육청에 들어온 이후 지난 6년여의 시간동안, 실제로 ‘승진하며 전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껴서 전직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합격하여 전직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 내부에서 편하게 하는 대화였기 때문에, 조금은 더 편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교육청 문화는 교사들로만 구성된 학교 안 교직문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교사’로 규정하지 ‘공무원’이나 ‘관료’로 규정하지 않는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교직문화에서는 ‘승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더라도 그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대부분의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지 않고, 교사로서 정년을 맞이하게 되는 교직문화의 특성 상 ‘승진’이라는 사실은 일부 교사들의 욕심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승진은 수업은 열심히 하지 않고 행정업무에만 몰두하는 교사들이 하는 것이라며, 교감과 교장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는 교사들도 있다. 특별한 의도 없이 다른 교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무엇인가를 더 열심히 하는 젊은 교사에게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승진하려고 애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승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청 안에 들어온 이후 천천히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군에서 장교 생활을 하며 느꼈지만 잊고 있던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공무원이나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체계화된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승진'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삶의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을 정도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이 승진을 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이후에 교육청 안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이 장학사로 전직한 이유가 ‘승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각 시도교육청별로 차이는 있지만, 장학사로 전직을 하면 일정 기간을 근무한 이후에는 다시 교원으로 전직을 하게 된다. 단, 이 때는 전직 이전의 교사가 아닌 교감으로 승진 전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는 뜻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은 교감 승진 전직 없이 단기간 근무하는 임기제 장학사도 있고 과거의 공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승진을 꿈꾸는 교사들이 과거에 비하여 많이 줄어들어,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교감으로 승진을 하는 것도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줄어들었다.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길이 되어 매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개 전형을 통하여 선발되는 전직이 가장 확실하고 깔끔한 승진의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장학사 중에는 '승진'이 직접적인 동기였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이것을 학교 현장에 있을 때 드러내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가장 순수한 동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승진을 꿈꾸며 전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등한시하고 주어진 업무도 등한시하며 전직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여 주변 교사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장학사가 된 사람들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모든 장학사가 다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내가 만났던 '승진하고 싶어 장학사가 되었다'고 말한 분들 역시 대부분 학교 현장에서 수업도 업무도 열심히하고 학생들과도 동료교사와도 잘 지내던 사람이었다.
교육청에 들어오자마자 학교로 교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대었던 것이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학교 현장의 역량 있는 교사들이 더 많이 전직을 꿈꾸며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그 동기가 무엇이던지 간에, 열정적인 교사들 고민하는 교사들 연구하는 교사들이 더 많이 교육청에 들어와서 학교 교육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