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
등산을 하며 늘 재미있고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예상치 못한 날씨에 당황하기도 하고, 길을 헤매며 애를 먹은 적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월악산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특별한 산행’으로 남아 있다.
위치: 충북 제천시
코스: 보덕암 - 하봉 - 중봉 - 영봉(정상) - 원점회귀
날짜: 2023. 6. 18
코로나 자가격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등산을 시작한 지 10여분이 흘렀을 무렾,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도는 듯 어지럽기 시작했다.
"잠깐만 쉬었다 갈게요!"
일행들에게 쉬겠다고 외치고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숨을 고르자 어지럼증은 사라졌고, ‘이제 괜찮겠지’ 싶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30분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됐다. 걷다 앉고, 또 걷다 앉기를 수차례. 약해진 몸에 강렬한 햇빛이 더해져, 몇 걸음만 걸어도 머리가 ‘핑’ 돌았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여기서 멈추는 건, 힘들어도 끝까지 가는 결단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이대로 더 가면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더는 일행에게 짐이 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 몸이 버텨주질 않았다.
‘그래, 용기 내서 포기하자…!’
“저 여기 좀 앉아있을게요 일단 먼저 가세요~”라고 말하고, 이번엔 좀 평평한 바위를 찾아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속 뜻은 “여러분이 사라지면 저는 여기서 간식 먹고 음악 들으며 내려갈 거예요.”였다.
일행들이 떠나고, 배낭에서 물과 바나나, 견과류를 꺼냈다. 정상에서 먹으려던 김밥도 한두 개 맛봤다. 가방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하산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일단 쉴 만한 그늘이 나올 때까지 가다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하봉을 지날 때까지도 야속하게도 그늘 한 점보이지 않았다.
‘그럼, 중봉까지만 가볼까?‘
다른 등산객에게 물으니 정상은 멀었지만 중봉은 금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상까지 가려는 부담이 없으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다른 등산객에게 인증샷을 부탁하기도 했다. 충분히 쉬며 에너지를 보충했더니, 중봉까지 오르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중봉을 지나니 신기하게도 ‘조금만 더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발, 또 한 발 옮기다 보니 어느새 월악산의 정상, 영봉이 눈앞에 다가왔다.
중봉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하지만 '못 가면 말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석 바로 아래까지 다다라 있었다. 거기서 드디어 제대로 된 그늘을 드디어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먼저 간 일행들이 점심을 먹고 쉬고 있었다.
몇 시간 못 본 사이였지만, 마치 며칠 만에 재회한 듯 반가웠다. 반가운 일행들을 뒤로하고, 아직 쌩쌩한 동생 한 명과 함께 정상석까지 5분 정도 더 걸았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는데,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애초에 정상까지 오를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늘을 찾아 조금만, 조금만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닿아 있었다.
이 날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근성이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깨달았다. 정상까지 오른 근성만큼이나 정말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한 용기 또한 값지다는 것을.
월악산에서 나는, 시작할 때보다 멈출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멈춤 끝에, 다시 새로운 용기가 찾아온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