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에서 길을 잃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

by joy

한창 일출산행의 매력에 빠져 있을 무렵, 친구와 안내산악회(운영자가 산행지를 공지하면 회원들이 산행지를 신청하고, 신청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왕복 전세 버스를 제공하는 일회성 산악회)를 통해 소백산 일출산행을 신청했다.



am 3:00 소백산 입산


소백산은 이미 두 번이나 오른 적이 있어, 이번 산행도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연휴였고, 그것도 ‘일출 산행’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많았다. 평소 같으면 28인승 우등버스 한 대로 가던 산행이었는데, 이날은 무려 버스 두 대. 50명 가까운 인원이 한꺼번에 소백산을 향해 나섰다.






소백산 1439.5 m


위치: 충북 단양군

코스: 어의곡탐방지원센터 - 비로봉(정상) - 천동삼거리 - 천동탐방지원센터 - 다리안관광지 주차장

날짜: 2023. 8. 15




초반에는 모두가 한 줄로 길게 이어져 걸었다. 그러다 조금씩 각자의 페이스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앞서 나가고, 누군가는 숨을 고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뒤엔 더 이상 헤드랜턴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 앞서가던 불빛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탁탁탁’ 등산 스틱이 땅을 찍는 소리마저 끊기고, 오직 내 이마 위에 헤드랜턴 빛만 살아 있었다. 그런데 하필 혼자가 되었을 때,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분명 두 번이나 왔던 길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표지판도 없고,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헤드랜턴 불빛이 있지만, 낮처럼 멀리 보이지 않으니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앞서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전화는 잘 터졌지만, 초행길이었던 친구는 현재 본인 위치와 내가 있는 위치를 가늠할 수도 없어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급히 등산길 찾기 앱을 켰지만, 설치만 해놓고 실제로 써본 적이 없어 소용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쾌하게 들리던 계곡물소리는 갑자기 나를 덮칠 것만 같은 파도 소리가 되어 귀를 덮쳤다. 바람에 부딪히는 풀잎 소리는 이상하게도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나… 어떡하지?’

아무 길이나 가다 길을 잃으면 정말 큰일이었다. 잘못 발을 디뎌 발목이라도 삐거나, 미끄러진다면… 상상만으로도 정말 아찔했다. 두 발을 땅에 꼭 붙인 채, 왼쪽 한번, 오른쪽 한번 번갈아 보았다. 결국 마음을 정했다.


‘그래…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자…!‘

해가 뜨면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고, 길도 금세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자꾸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장면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곧 밝아질 거야.’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데,


‘탁… 탁… 탁…’

어둠 속을 가르는 등산스틱 소리. 그 소리는 마치, 나를 구하러 오는 신호처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타난 한 등산객.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반가움에 사연을 쏟아냈다. 일출산행을 왔다가 일행과 떨어져 갈림길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고… (그 등산객은 나보다 훨신 늦게 입산을 했는데, 내가 천천히 가는 바람에 그 길목에서 만나게 된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둠 속에서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에 그가 더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그는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 무사히 능선에 도착했다. 곧 날이 밝아, 헤드랜턴을 꺼도 될 만큼 시야가 트였다.


일출산행의 가장 큰 긴장감은 ‘정상에 오르기 전에 해가 떠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다. 이번에도 일출을 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막차를 잡으러 뛰는 심정 같았다.



am 5:55 소백산 정상


그리고 끝내, 나는 그 막차를 잡았다.





광복절을 기념해 태극기를 가져온 분이 “이거 들고 찍으세요”라며 태극기를 건네주셨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둠 속에서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던 내가 이렇게 소백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니. 이날의 일출은 나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음번 일출산행에서는 절대 일행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아야지.. 또 하나 배워간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