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대관령면
등산을 시작한 뒤, 주말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특히 겨울이면 설산을 보기 위해 ‘언제 눈이 내리나’ 눈 오는 주말만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마냥 눈만 기다릴 수는 없다. 눈이 너무 많이 오면 폭설로 등산로가 통제되고, 반대로 눈이 너무 적게 오면 설산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밋밋하다. 그러니 늘 ‘적당히', '쌓일 정도로만' 오길 바라야 한다.
그 주에는 일주일 내내 눈이 내렸다. 덕분에 예쁜 설산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아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와 안내산악회(운영자가 산행지를 공지하면 회원들이 산행지를 신청하고, 신청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왕복 전세 버스를 제공하는 일회성 산악회)를 통해 '계방산' 산행을 신청했다. 하지만,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온 탓에 모든 국립공원 등산로가 통제가 되었고, 당연히 계방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경우 안내산악회는 산행을 취소하거나 다른 산으로 변경하는데, 이날은 급히 ‘선자령’으로 산행지가 바뀌었다.
선자령은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길로, 봄·여름·가을에는 백패킹 명소로, 겨울에는 동화 같은 설산 풍경으로 유명하다.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예쁜 설산을 볼 수 있다니, 오히려 좋아!‘
선자령 1,157 m
위치: 평창 대관령면
코스: 대관령마을휴게소 주차장 - 송신소 - 전망대 - 정상 (원점회귀)
날짜: 2023.12.16
막상 도착해서 보니 선자령의 설경은 기대 이상이었다. 등산스틱이 필요 없을 만큼 경사가 완만한 길에,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은 그야말로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바로 선자령 정상의 ‘똥바람’.
선자령 정상은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 덕에 백패커들에게 사랑받지만, 이날 나를 맞이한 선자령 정상의 바람은 시원함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동계 백패킹을 하러 온 사람들의 텐트가 무리 지어 있었는데, 강풍에 휘청이며 거의 찢어질 듯해 보였다.
태어나 처음 겪는 강풍에 몸까지 휘청거려 최대한 몸을 낮추며 걷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산행을 멈추고 모두 지금 바로 하산하라는 산행대장의 메시지였다. 정상석을 코앞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아쉬운 마음 보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빠르게 대처한 산행대장의 리더십에 감탄했다. 이렇게 가다간 누구 하나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강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 같은 정상을 벗어나자, 금세 평화롭고 고요한 설산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이게 정말 같은 날, 같은 산이 맞나..?’
동화 속에서 공포영화로, 다시 동화 속으로 돌아온 극적인 변화였다.
산 날씨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더니..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