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 월출산
등산을 시작한 지 3년쯤 됐을 무렵, '안내산악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차가 없는 나에게 '지방산'을 가는 건 정말 큰 이벤트였는데, 안내산악회를 알게 된 후론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게 돼 나의 등산 지경을 훨씬 더 넓힐 수 있었다.
안내산악회란, 운영자가 산행지를 공지하면 회원들이 산행지를 신청하고, 신청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왕복 전세 버스를 제공하는 일회성 산악회이다.
새로 알게 된 안내산악회를 통해 친구와 함께 전남 영월에 위치한 '월출산' 무박 일출 산행을 신청했다. 밤 11시에 사당역에서 안내산악회 버스로 출발해 새벽 4시에 등산을 시작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첫 도전이라는 설렘과 아무도 없는 적막한 산의 고요함, 그 고요함이 주는 낭만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컸다.
위치: 전남 영암군
코스: 경포대탐방지원센터 - 경포대능선삼거리 - 통천문삼거리 - 천황봉(정상) - 통천문삼거리 - 구름다리 - 천황사삼거리 - 천황사 공영주차장 (약 6.4 km)
날짜: 2023. 7. 29
이날은 안내산악회 회원들의 연령대가 평소보다 더 어린 편이었다. 20대 어린 분들도 많이 보였는데, 막연하게 생각했던 MZ 모습과 달리 다들 정말 부지런하고 열정이 넘쳐 보였다.
나도 20대 때 저렇게 열심히 운동 좀 할 걸 하는 후회를 하며.. 이날을 위해 준비한 헤드랜턴도 장착하고, 계곡 주변은 바위가 많이 미끄럽다고 해서 등산 스틱도 꺼냈다. 출발 전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고, 새벽 4:00 드디어 비장한 마음으로 월출산에 입산했다.
그리고 10분 정도 걸었을 무렵, 자연스럽게 선두 그룹과 중간, 그리고 후미 그룹이 나뉘었다. 그리고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난 후미 of 후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후미 그룹에 나를 포함한 비슷한 속도의 세 명이 모여 같이 걷게 되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오직 '월출산 정상'이라는 목표가 우리 셋을 한 팀으로 만들었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누굴 챙길 상황이 아니었지만, 전교 499등이 500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나 남은 에너지젤을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팀원(?)에게 기꺼이 나눠주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산의 고요함, 그 고요함이 주는 낭만 따위는 그곳에 없었다. 오직 땀범벅인 채로 비몽사몽 하는 후미 삼인방만 있을 뿐..
그렇게 서로 격려하고 오르다 보니 어느덧 머리 위에 있는 나무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해 헤드랜턴을 끄고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상 바로 직전인 '통천문'에 도착하니 해가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정상까지 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멋지게 떠오를 준비를 하는 해를 보니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
남은 에너지를 끌어올려 정상까지 쉬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후미 삼인방 모두 정상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뜬다, 뜬다!!"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그렇게 월출산 정산에서 눈부신 일출을 맞이했다.
산 정상에서 보는 일출의 느낌은 정말 특별했다. 어둑어둑했던 산 전체가 한 번에 밝아지는 모습을 볼 때의 기분은 벅차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후로도 일출산행을 더 다녔지만, 월출산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의 웅장 함은 잊을 수 없다. 또 정상에서 어느 곳을 바라봐도 조망이 다 훌륭해 인생사진을 건지기에도 너무 좋았다!
사진까지 실컷 찍은 후에야 맘 편하게 앉아 싸 온 간식들을 꺼내먹었다. 이번 산행은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코스가 훨씬 더 힘들다는 걸 알기에 든든히 챙겨 먹고, 충분히 쉰 후 하산을 했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하산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하지만 천황봉에서 통천문삼거리까지 다시 내려와 구름다리를 지나 내려오는 그 길이 너무 멋있어 힘든 만큼 보람이 컸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농담처럼 산에 빠진 걸 '산뽕'을 맞았다는 표현을 한다. 이 날 나는 '일출 산뽕'을 제대로 맞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