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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30. 2023

하면 할수록

이왕 버린 몸 


감정이 증폭되거나 어떤 일이 점점 강도가 강해지는 것을 ‘에스컬레이팅’이라고 한다. 


화가 날 때 시작 단계에서 갑자기 폭발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심기를 거스르는 작은 불쾌감에서 시작하여 언성이 커지고 급기야 기물을 부수거나 상대를 폭행한다. 


최근에 한 슈퍼에서 술을 사며 봉투를 그냥 달라고 조르다가 폭행으로 이어진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다.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전형적인 감정의 에스컬레이팅이다.     

 

엄마와 자녀들 간에 또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이러한 감정의 에스컬레이팅을 심심치 않게 경험한다. 시발점이 되는 작은 일에서 초점이 과거에 있었던 일로 불씨가 옮겨 붙을 때가 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분노 폭발로 창대하리라.      


화가 나는 감정도 에스컬레이터의 비상정지 버튼이 필요하다. 내가 예전에 화를 잘 내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내부에서 증오의 에너지가 증폭했던 감각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착!! 소리를 내며 그은 성냥에서 피어오른 작은 불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화염으로 내 마음에 분노가 되어 이글이글 타 올랐다. 


다행히 지금은 마음속에 긴급제동 장치를 하나 마련해 두었다.      


탄력

술을 마실 때에도 흔히 ‘탄력 받는다’는 말을 한다. 시작은 한 잔, 한 병이지만 다음 날 지난밤의 탄성이 너무나 좋았음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꼭 부정적이거나 해로운 일에만 이런 ‘에스컬레이팅’이나 ‘탄력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단 1킬로미터도 못 달리고 다리가 멈춘다. 계속 반복하면 점점 체력이 좋아지면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가 늘어난다. 


그러면 이제 마라톤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고 자신의 기록을 경신한다. 그럼 이제 풀코스로 달려보기로 한다. 더 좋은 러닝화를 사고, 러닝에 관련된 각종 책과 자료들을 섭렵한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수영이나 골프, 다양한 운동들이 더 강하게, 더 실력이 탁월해지는 방향을 추구하며 증진한다. 


하강

이와 반대로 이왕 망친 몸이라는 관리의 하강이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상행만 있지는 않으니까 당연히 하행도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치팅이라는 명목으로 평소에 멀리 하던 빵을 먹으면 처음에는 한 입 내지는 반 정도 먹고 멈춘다. 


오늘은 빵을 조금 먹고, 내일은 면요리를 조금 먹고, 주말이니까 족발도 먹고 입가심으로 비빔국수도 먹는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에 망친 몸 오늘은 허리띠 풀고 먹자!!! 본격적으로 며칠간 폭주를 한다. 밀가루를 몇 개월 동안 완전히 끊었던 지인이 조금씩 먹기 시작하니까 점점 그 양이 늘더라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빵을 하나를 다 먹고, 국수를 한 그릇을 비웠단다. 3일 이내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강의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고 하니 주의!!!


자기 조절

성격 강점 중에 자기 조절이라는 덕목이 있다. 자신의 다양한 욕구와 감정, 이에 연결되는 행동을 잘 통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나 스스로 자기 조절 능력이 좋은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60점 정도? 술을 끊기 전에는 20점 정도였다고 생각하니까 점수가 많이 오르긴 했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과자에 손을 많이 대고 있다. 그 양이 아닌 게 아니라 에스컬레이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 센터의 회원 중에 앉은자리에서 초코파이 한 박스를 다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초코파이 한 봉지를 뜯으면 -박소현 씨 같은 소식좌가 아닌 다음에는- 대체로 한 덩어리를 다 먹는다. 그런 논리로 한 박스를 뜯었으니까 한 박스를 다 먹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무적의 논리인가 싶으면서도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기울이기

사람은 안 하면 안 하는 쪽으로, 하면 하는 쪽으로 방향이 기울게 마련이다. 사람이든 행동이든 무엇인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마음도 몸도 점점 더 그쪽으로 상승하게 된다.      


절제는 지나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긍정적 특질이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의 특징이라고도 한다. 확실히 지나치게 상승된 감정이나 특정 행위는 행복보다는 불쾌감을 유발한다.    


요즘 피아노 연습을 가열하게 하고 있다. '그만해야지, 여기까지만 쳐야지' 하면서도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손목을 잡는다.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상태가 되어서야 연습을 중단한다. 멈춤 버튼을 하나 더 마련해야겠다. 


23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올해가 가기 전에 멈추고 싶은 나만의 심리, 행동 양식의 에스컬레이팅이 몇 가지 있다. 하면 할수록 더 해 달라는 뇌의 외침으로부터 나의 자아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기를.     


괜히...... 다른 사람들은 삶의 어떤 측면에서 절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다.         





표지그림 : Artemisia Gentileschi, <Maria Magdalena in Esctasy> (1620/25 or 16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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