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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09. 2023

타오르는 삼각관계

나를 차지하는 승자는 누구인가?


나의 소유권을 묵시적으로 주장하는 긴장이 감돈다. ‘네까짓 게 어디 뺏어갈 수 있으면 뺏어가 보든가’ 하는 고高자세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등장해 우리의 관계를 어지럽힌 훼방꾼을 멸시한다. 새로 등장한 사람은 기죽지 않고 기세가 등등하다. 이제 만날 만큼 만났으니까 놔주라고 한다. 이 여자는 내가 데리고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누구도 입 밖으로 네가 포기하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팽팽하게 날 선 긴장감이 중간에 놓인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를 중간에 놓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어떤 남자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지만, 남녀의 치정이 얽힌 어장관리 삼각관계 같은 것이 아니다. 나를 중간에 두고 벌어지는 장모와 사위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나와 엄마의 융합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최근에 상담심리학 수업에서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에 대해서 학습을 했다. 공부를 하면서 삼각관계 이론을 보니 이것은 완전하게 엄마-나-남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었다. 내 머릿속 전구에 불이 켜졌다. 지금까지 우리 셋이 보내왔던 갈등의 시간들 속 에피소드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한국은 가족 중심 문화

가족 간의 연과 정이 끈끈할수록 사이가 좋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사이가 나쁜 것보다는 그래도 화기애애한 관계가 좋기는 하다. 그런데 화기애매한 관계가 되면 불안이 상승하고 갈등이 발생한다.      


끈끈하게 붙어있는 관계를 보웬은 ‘융합’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정확한 경계선 없이 쌍쌍바가 붙어있는 것과 같다. 쌍쌍바는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질 때도 있지만 힘의 분배가 잘못되면 한쪽 스틱에 아이스크림이 더 크게 붙게 된다.      


가족이라고 해도 쌍쌍바처럼 철썩 달라붙어있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역동이다. 찹쌀떡 아이스크림은 하나의 포장 용기 안에 있지만, 확실한 경계선을 두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가족도 경계선을 두고 분화가 이루어져야 가장 건강한 가족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가족 관계는 ‘높은 친밀감-돌봄, 낮은 간섭’이라고 한다.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있지만 개인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엄마의 관계는 무엇일까?      


높은 친밀감-돌봄높은 간섭

나와 엄마는 정말 오래된 친구처럼 즐겁게 지냈다. 한편으로는 여느 모녀처럼 서운한 일도 있고 싸우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내가 혼난 일도 많다. 엄마는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오지 않을 것을 강조하신 편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미주알고주알 캐묻는다거나 엄마의 선호하는 스타일을 강요하시지는 않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다양한 장면에서 나의 경계선을 침범한 것은 사실이다. 돌봄이라는 미명아래의 높은 간섭 말이다. 아닌 척하면서 통제 기술을 발휘하는 고도의 심리 작전을 펼치시는 유형이다. 이런 엄마는 말로는 독립을 하라고 하지만 영혼이 주는 메시지는 ‘가긴 어딜 가’였다.     

 

엄마가 지시적으로 나의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으시더라도 나는 K장녀의 운명을 지닌 자로서 원가족의 규범을 충실히 따르려고 애썼다. 이것이 결혼을 한 후에도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엄마는 아빠를 못마땅해하셨다. 사연을 들어보면 아빠가 잘하셨다고 편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나 역시도 아빠에게 엄마가 받은 종류의 구박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셨다. 즉 삼각관계는 이미 ‘엄마-나-아빠’의 구도로 원가족에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백기를 흔든 사람은?

나는 30대 초반에 강력하게 결혼을 들이미는 박력 있는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남자는 장모님께 사랑받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입은 짧아도 씨암탉은 기대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사위에게 철벽을 치셨고, 나를 너무나 아까워하셨다. 


나는 나대로 남편과 가까워지지 못하고 늘 엄마만 찾았다. 친정 식구가 다 같이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남편은 마치 '은따'처럼 섞이지 못하고 혼자 배회했다.  

   

어느 날 아이와 관련해서 고민을 이야기하려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는 바쁘니까 그런 얘기는 장모님과 하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보웬의 삼각관계 이론에서 바로 이러한 부분이 나온다.     

 

삼각관계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갈등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직장생활 등으로 도피를 한다  

   

“니들 둘이 잘해 봐”라는 말을 남긴 채.     


융합에서 분화로

분화는 성숙이다. 그러니까 융합은 미성숙이다. 나는 엄마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다양한 경계선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이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해 왔던 간섭을 거두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서 좋은 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는 나의 남편이 엄마의 남편처럼 나를 못살게 굴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우선 그런 걱정을 거두실 수 있게 다양한 실례를 들어가며 남편의 장점을 어필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섰다. 아이에 대한 고민과 의논은 엄마와 하지 않고 남편이 바쁘면 바쁜 대로 카톡에 일방적으로 남길지언정 남편과만 나눴다.      


정서적으로 융합된 관계는 독립을 방해한다. 그렇다고 정서적인 독립이 절연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전화로 수다도 떤다. 하지만 가급적 아빠나 남편의 험담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시동을 거셔도 내가 반응이 없으면 눈치 빠른 엄마는 바로 멈추신다.      


삼각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진행형이다. 원가족은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편했던 이전 관계를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삼각관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나의 성장을 응원한다. 그나저나 남편이랑은 언제 같이 살지?




                         


표지그림 :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파판틀라 시장에서>,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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