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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29. 2023

손절의 굴레

누구의 책임인가


손절;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말로, '손해를 보더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끊어낸다'는 뜻으로 길이를 줄이기 위해 '손절매'에서 '매'를 뺀 후 다양한 상황에서 쓰인다.(namu.wiki)          


예전에는 친구끼리 싸우거나 마음이 안 맞을 때, ‘절교’를 했다. 명시적으로 너와 절교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요즘은 절교라는 말보다는 ‘손절’이라는 말이 보편적이다. 주식투자에서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 인간관계에 적용되니 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이제 그만 만나자

연인과 헤어질 때에는 확실하게 헤어지자고 말을 하고 관계를 정리한다. 잠수이별도 있지만 이건 정말 사랑했던 애인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그런데, 잠수이별을 하는 애인은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사회에서 만난 관계의 손절은 대부분이 잠수이별이다. 잠수손절이라고 해야 하나.      


직장에서 만나 각별하게 친해진 사람과 손절하고 싶을 때, “우리 이제 그만 만나.”라고 하는 사람이 있던가? 동네 엄마들 관계에서도 “준석이 엄마, 우리 잘 안 맞는 거 같으니까 이제 만나지 마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나? 싸움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내가 먼저 거북한 말 하기는 싫고, 더더욱 관계는 유지하기 싫을 때가 있다. 이별을 고하는 말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래서 상대를 냉담하게 대하고 대면대면하게 반응하며 적당히 눈치껏 떨어져 나가 주길 기대한다. 이런 전략은 높은 확률로 성공을 보장한다. 하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눈치를 냉동실에라도 넣어 둔 것 같은 사람이라도 만나면 대상자를 피하는 일이 007 작전이 되어 버린다. 직접 경험한 일이다. 


손절 최대 몇 명?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몇 명을 손절하고 몇 명에게 손절을 당하며 살까?      

나만 궁금한 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손절 몇 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았다. 진짜 있다!!     


28살 인생에 지금까지 손절 한 사람이 5명이라는 글쓴이의 글 아래로 댓글들이 달렸다. 

나이는 밝히지 않았지만 한두 명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음, 그리고 없음도 꽤 많았다. 손절한 사람이 없다고 꼭 그 사람의 인간관계가 탄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냥 참고 있거나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응, 너 아냐!" 하면서 수시로 손절을 거듭하고 있다면 프로 손절러인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다. 나에게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그건 나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자를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돈 문제가 얽힌다. 바람둥이만 만난다거나, 자격지심이 있는 남자를 만나서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이런 문제들은 남자가 가진 행동 양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의 심리적 결핍이나 부적응에서 초래하는 문제적 만남의 반복일 수 있다.      


손절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

내가 의도적으로, 때론 치밀한 계획 하에 손절을 한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 보았다.(남자친구 제외)     


술버릇이 고약했던 친구 C(가장 긴 시간 만남)

입에 필터가 없던 직장 동료 J

나를 막내 동생 부리듯 하던 띠동갑 연상 여성 A

다단계에 가입해서 비타민 먹으라고 강요하던 아이 친구 엄마 S

나의 모든 것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던 여성 T


위의 다섯 명은 만남을 지속하면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안 되겠다는 판단 하에 손절을 한 사람들이다. 내가 저 사람들과 있었던 불쾌했던 일들을 글로 적기 시작하면 연재가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하나같이 무례하고 막돼먹은 인간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겠다.      

모두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보통 사람들이다. 특별히 나를 무시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괴롭히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과의 손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선을 넘지 마시오 

그들이 농담의 선을 넘고 넘다 못해 무시에 가까운 요단강을 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요구를 해도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한계를 느낀 내가 이렇다 할 경고나 거절의 의사 없이 그들을 피해 도망가버렸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교실에 있던 책상은 지금의 책상처럼 일인용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모양으로, 의자만 따로 떨어져 있었다. 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학기 초에 짝을 배정받으면 제일 먼저 책상의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지우개의 한 귀퉁이라도 넘어오면 그 지우개는 내 것이라는 살벌한 조항도 잊지 않고 엄포한다. 


바운더리

네드라 글로브 타와 브라, 심리 치료사의 <나는 내가 먼저입니다>, 영어 제목은  <Set boundaries, find piece>라는 책을 읽었다. (원서 제목과 번역서 제목이 상당히 달라서 둘 다 적어 보았다)


이 책에서 네드라는 말한다. 


바운더리는 암암리에 합의된 규칙이 아니다.

     


바운더리는 노력을 하고 애를 써서 나의 안전을 위한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철벽을 쳐서는 안 된다.


바운더리의 역할을 일부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기 돌봄의 실천이다. 
관계 내에서 용인할 수 있는 행동과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구분하게 해 준다. 
타인에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게 해 준다. 
관계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 준다.  
관계를 건강하고 명확하게 해 준다. 


바운더리는 허술한/건강한/철벽으로 나눌 수 있고 나는 이 중 많이 기운 허술한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건강한 쪽으로 가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 파르르 떨리던 입술과 빨라지던 심장 박동을 감수해야 했다. 허술했던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근육이 떨리지 않으면 근력은 성장하지 않는다. 


네드라도 "아니요."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책에서 밝혔다.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지나간 상황들에서 어떤 말을 했어야 하는지 검토를 하는 시간들을 가져보려고 한다. 


나의 상담선생님은 "창도 방패도 되지 않게 대화하기."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이 상담을 종료하고 나서도 가장 큰 숙제로 나에게 남아있다. 




표지그림 : Alphonse Mucha, The Seasons,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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