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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10. 2023

공부는 해로워

사이버대학 한 학기를 마친 소회

사이버 대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끝났다. 

  

새로운 공부에 대한 의욕이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무 같았다. 나도 이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쁨으로 마음의 습도가 40~60%를 유지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무미건조하게 쇼핑몰을 전전하고 다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촉촉함이다. 하지만 한 학기 공부를 하고 보니 의외로 공부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시험 시차

사이버 대학교 수업은 실시간 강의는 아니다. 교수님들이 미리 영상을 제작해 두시고 매주 월요일 오후 12시가 되면 강의를 열람할 수 있다. 하루에 두 과목을 봐도 되고, 주말에 몰아서 네 과목을 봐도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게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험시간이다. 아무리 사이버 대학이라고 해도 시험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시험유예 신청을 할 수 있다. 본인의 입원, 결혼식이나 회사 출장, 가족의 장례식과 같은 정말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정해진 날 시험을 볼 수 없으면 차후에 서술식 시험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밴쿠버와 한국의 시차는 17시간이다. 한국의 아침은 밴쿠버의 저녁이고, 한국의 저녁은 밴쿠버의 새벽이다. 중간고사는 운 좋게 세 과목은 오후 5시 6시에 보았고 한 과목만 밤 11시에 보았다. 그런데 기말고사의 시험 시간은 참 난감했다.      



새벽 4, 3, 1밤 11

불행 중 다행으로 네 과목의 시험이 같은 날은 아니었다. 그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새벽 4시에 시험을 보는 날(한국 밤 9시)은 전날 아침 서킷 트레이닝을 뛰었다. 몸을 혹사시켜 저녁에 일찍 자기 위한 전략이었다. 8시에 자고 1시에 일어나서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새벽 4시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치밀한 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문제는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작전 외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몸은 만취한 상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정말 오랜만에 술 먹고 새벽에 깨어나 비몽 사몽하던 느낌을 재생했다. 새벽 5시에 시험이 끝나고 잠을 자려고 했지만 이미 과 각성된 몸은 잠에 들지 않았고, 수면 부족으로 그렐린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탄수화물을 갈망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라면을 하나 끓였다.      




새벽 3시(한국 저녁 8시)에 시험 보는 날은 작전을 변경했다. 똑같이 몸을 혹사시키는 서킷 트레이닝을 오전에 뛰고 낮잠을 푹 자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새벽 3시까지 버티기로 했다. 이번 작전이 지난번 작전보다 현명한 방법이었다. 

     


카페인의 귀환

술을 끊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도 끊었다. 커피를 끊었다기보다 카페인을 끊었다. 디카페인 커피는 현재 진행형이다. 새벽 3시, 밤 11시까지 버티려니 카페인의 원조가 절실했다. 정말 오랜만에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신 탓인지 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카페인 반감기가 6~8시간 정도이고 48시간이면 체내에서 완전히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틀만 잘 버텨보자.      



부종

시험날짜가 임박하면 모든 수업 영상들을 2배속으로 틀어놓고 강의록을 보며 복습을 한다. 그만큼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뇌가 과로를 하다 보니 단당류를 찾는다. 눈은 눈대로 바쁘고 입은 입대로 바빠진다. 혈류는 하지에 정체된다.  

     


피티를 받으러 갔더니 얼굴은 초췌한데 다리는 퉁퉁 부었다며 트레이너가 말한다. “이렇게 공부가 무서운 거예요.”    



공부는 말이지......

내가 어릴 때 피아노를 그만두고 다시 배우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가 돈 대주고 밥 해줄 때 열심히 칠 걸...... 


그런데 요즘 그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공부는 엄마가 밥 해 줄 때 하는 거야~~     


밥도 하고 공부도 하려니 고작 12학점에도 이렇게나 버겁다. 직장도 다니고 육아도 하면서 18학점 듣는 사람은 멘털이 하이 엔드다.      



시험 High

러너스 하이, 카페인 하이, 슈가 하이처럼 시험 하이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중간고사 때는 시험 보기 직전에 심장이 어찌나 뛰는지 둥둥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또렷이 들렸다. 경험이 선생이라고, 한 번 겪었더니 기말고사는 그만큼 긴장되지는 않았다.      



그럴 줄 알고 준비했다는 듯이 정시가 되어 열린 1번 문제는 교수님들의 회심의 일격이었다. 네 과목의 1번 문제가 모두 똑같이 길고 비비 꼬여있었다. 인류애를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1번 문제에서 강력하게 기선제압을 당하고 나니 머리가 어질 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교감신경이 최대치로 활성화되며 부교감신경이 기능을 상실하는 소리가 들린다. 기말고사는 중간고사보다 어렵게 나온다는 선배님들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시험 문제의 난이도는 극강의 롤러코스터였다. 



애나 램키는 어려운 일을 처리하고 났을 때 나오는 도파민은 즉각적 만족을 주는 자극 물질로 인해 나오는 도파민보다 유지가 길다고 했다.      



11시에 뇌를 흠씬 두들겨 맞고 시험이 종료를 하자 마치 슈가 하이처럼 고조된 쾌감이 내 안에서 치고 올라왔다. 비록 시험 문제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꾹 참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검토까지 했다는 만족감이 (점수와 상관없이) 도파민을 최대치로 방류했다. 시험 하이!!!

   

   



끊었던 커피를 다시 마시게 하고, 끊겠다고 다짐한 초콜릿을 먹게 하고,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가고, 잠을 못 자서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하고, 다리를 퉁퉁 붓게 만드는 것이 공부다.    

  


공부가 이렇게나 몸에 안 좋다. 그런데 나는 계절학기에 두 과목을 신청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떠오른다.     

 


   나는 적어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역시 몸에 안 좋은 건 자꾸 끌리나 보다. 






표지 그림 : Caravaggio, <Boy Bitten by a Lizard>,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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