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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04. 2024

누가 독심술을 할 것인가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Hall, E. T.)은 1976년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에서 문화 간의 의사소통 차이를 ‘고맥락’과 ‘저맥락’의 개념으로 제안했다. 맥락(context)은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소통에서 서로 이해를 돕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등의 공유 요소이다.     


저맥락 문화는 흔히 서구권이라고 말하는 북미 지역과 독일, 스위스, 북유럽 등이다. 이곳에서는 의미 전달을 위해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자 하는 말을 명시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다 보니 말이 길다.      


고맥락 문화는 아시아권인 한국, 중국,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이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내용 자체보다는 맥락과 배경에 비중을 두고 우회적, 함축적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 그러니까 개떡 같이 말해도 콩떡 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홀은 저맥락과 고맥락을 큰 대륙 내지는 큰 문화권으로 구분을 지어서 제안했는데 내가 보기에 작은 땅덩어리 한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저맥락과 고맥락을 구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완전한 고맥락 문화이고 경상도는 저맥락 문화에 가깝다. 어디까지나 내가 느끼는 바이다.     

 

최근에 친정 엄마가 나의 의견을 구하신 일이 있다. 새로 시작한 취미 활동 교실에서 겪고 있는 인간관계의 갈등에 대해서였다. 아무래도 내가 상담도 받았고 상담 심리학 공부도 하고 있으니 이렇다 할 해결책 까지는 아니어도 팁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엄마의 말씀을 쭉 듣고 나니 내 머릿속에 에드워드 홀의 고맥락과 저맥락이 떠올랐다. 엄마와 함께 한 지난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살펴보면 엄마는 명시적으로 지시를 하거나 언어로 기분을 전달하시기보다는 표정과 태도로 의미를 전달하셨다. 그 유명한 '기분이 태도가 되는' 분이시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빨라야 한다.     



하나 더,      



사람이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왜 내가 나의 진의를 빙빙 돌려 말하고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지를 좀 이해할 수 있었다. 표정으로 말해야 하는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 나의 의사 전달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친정 아빠는 말을 하면 ‘강의’ 시간이 되었고 요점을 정리하는 데에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굵고 짧게 '고함'을 사용하거나, 눈을 뾰족하게 뜨고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눌렀다. "스읍!!!" 하는 음향효과도 물론 넣었다. 적당히 알아서 이해하고 움직여야 했다.      


나는 오랜 시간 원가족의 고맥락 문화에서 의사소통을 학습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무드를 읽는 데에 신경이 발달했고, 내가 그러하듯 다른 사람도 ‘독심술’에 가까운 눈치를 탑재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여기까지 오고 보니 결론은 이렇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뭘 원하는지 타인은 모른다.     

 


엄마가 취미 교실의 사람들이 모두 독심술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듯이 나 역시도 사람들이 ‘알아서’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랐다. 내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알아서 농담을 멈춰주고, 내가 힘든 거 같아 보이면 알아서 도와주길 바랐으니 대부분의 경우에 남을 탓할 수밖에.


세상에 독심술 가는 없었다. 프로파일러를 만나면 좀 다를까?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정신건강학과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지금 내 마음을 맞춰봐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명 사람 마음 전문가들은 전후 사정 즉, 맥락을 직접적인 언어로 듣고 분석을 하는 것이지 척 보고 아는 독심술가나 신점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물며 전문가도 아닌 나는, 그래서 말로 풀어서 하기로 했다. 나의 경계선을 넘는 질문을 반복해서 하면 그런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상대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어도 내가 듣기에 불편한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첫 타석에서 두들겨 맞은 사람들은 나의 원가족들이다. 여전히 고맥락 문화에 익숙한 원가족들은 저맥락 문화로 물타기를 한 나의 태도에 아직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여전히 독심술을 바라는 기운이 남아있다. 분명하게 말했어야 하는데 말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장면들이 있다. 

    

경상도를 저맥락 문화라고 느낀 이유를 해명하고 가야겠다. 그것은 부산 사람인 남편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간 내가 만난 경상도 사람들의 샘플(?)을 생각해 보아도 확실히 의사 표현을 좀 더 명시적으로 했던 것 같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행간을 읽을 필요 없이 돌까지는 아니어도 직구로 말했다고 느낀다.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선을 지키며 말을 하는 것은 참 어렵다. 각 가정마다의 언어와 정서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집은 온 가족이 부부관계에 대한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반면 어떤 집은 비슷한 대화도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두 가정 출신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다면 어쩔 수 없이 상호 간에 불편함과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독심술을 바라지 말고 내 기분을, 원하는 것을 말로 해야 한다. I 메시지로, 창도 아니고 방패도 되지 않게.       





표지그림 : Henri Matisse, La Conversation (The Conversation),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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