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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13. 2024

어제도 간섭하는 말을 들었다면

여기를 살펴보세요

내가 사이버 대학에서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PT를 받을 때 트레이너와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옆에서 듣던 다른 회원이 무슨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상담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갑자기 트레이너와 질문한 회원의 상황극이 시작됐다. 

    

 요즘 상담 심리 공부하는 사람 진짜 많다, B.C(밴쿠버는 British Columbia주에 속함) 주에서 상담사 자격증 따려면 뭘 해야 한다, 대학원 어디로 가면 된다 등과 같은 대화였다. 나는 그 가운데에 서서 벌써 대학원에 진학했고 B.C주 상담사 자격증을 따서 상담 센터까지 열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알라딘의 마법의 양탄자에 태우고 이리저리 날아다닌 후, 다시 운동센터에 내려놓았다.   

 

친구 한 명은 대학원에 진학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논문을 쓸 생각 하면 벌써 토할 거 같다"라고 했다. 상대는 말했다. “그까짓 논문 쓰면 되지~~.” 간결하고 무심한 그 말에 “넌 논문 써 봤니?” 하고 물었다. 대답은 “아니.”였다. 그까짓 논문이라고...... 말은 참 쉽다.     


한 캐나다 지인은 뭐 하러 한국에 있는 사이버 대학에 돈을 내냐고 한다. 밴쿠버에서 대학교를 다니란다. ESL과정부터 시작하면 아이 학비가 무료*이고 학교 졸업하면 취직해서 영주권도 딸 수 있단다. 그래서 "당신은 그럼 왜 그렇게 안 했냐"라고 하니까 “난 영어가 안 돼서~~”라고 쿨하게 답한다.


다들 참 남의 일은 쉽게 말한다. 즉흥적으로 뇌에서 생성되고 나오는 표상적이고 표면적인 말들이다. 깊이 생각하고 상대를 가늠하여,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말들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이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외동아들을 둔 나는 지난 12년간,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무수히 많이 들었다. (심지어는 그 말을 최근까지도 들었다, 내가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네이버 카페에는 ‘외동아이’를 둔 엄마들만 가입하는 맘카페도 있다. 그곳에서 ‘외동 vs 다자녀’는 이념 대립에 가깝다.   

   

“외동은 외로워서 안 된다,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듣고 온 엄마가 카페에 글을 쓴다. 외동맘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그 말에 모두 분개한다. "외동이라서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글이 올라오면 그날의 카페 온도는 빠르게 뜨거워진다.      


나에게 영주권을 따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장점만을 본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나의 삶의 목적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만큼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아이의 친구 생일파티에서 만난 중국 엄마는 그날 처음 만났는데 자기처럼 영주권을 따라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해 본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과정이었더라도 성취했을 때, 그 길이 정답이었다는 신념은 굳건해진다.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 그것을 하라고 말하는 일만 남았다. (나에게는 심리상담이 그러하다)   

 

정답은 아니어도 좋은 효과를 본 것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 유튜브와 블로그에는 온갖 추천 정보들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이 좋은 걸 왜 안 먹어?] 내지는 [이 좋은 걸 왜 안 해?]라는 제목들이 클릭을 부추긴다.       


유독 남들이 하는 말마다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정 간섭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통제권은 나에게 있는데 깜빡이 없이 끼어든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나도 분명히 불쾌한 적이 있다.      


나에게 ‘캐나다 대학을 가라’, ‘영주권을 따라’, ‘애를 하나 더 낳아라’라고 말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얘기를 했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싶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자신이 익숙한 말투로 말할 뿐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인 말에 발목 잡혀서 끌려 다니지는 않는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선을 넘으면 넘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다.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변명할 일도, 화를 낼 일도 아니고 복수의 칼을 갈 일도 아니다. 이념의 갈등으로 갈 일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말을 하길 바란다면 그건 나의 통제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들 자기가 보고 배운 대로 말하고 사는 세상이다. 나의 평정심을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어떤 말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동요한다면 그 말이 내 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인지 잘 살펴볼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감정의 주도권을 넘기지 말자.                        


       



표지그림 :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were painted by 16th-century Netherlandish painters Pieter Bruegel the Elder and his son Pieter Brueghel the Younger.


*자녀무상교육

캐나다에서 부모 중 한 명이 학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면 자녀는 공립학교를 무상으로 다닐 수 있다. 때문에 자녀가 2명, 3명인 경우 부모 한 명이 학교에 등록해서 다니면 학비를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한 명일 경우, 대학교 학비가 공립학교 보다 비싸기 때문에 무상교육의 메리트는 없다. 


  

*책

유디트 글리크, <지혜를 읽는 시간>, 해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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