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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15. 2024

후견지명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사후 확신 편향(事後確信偏向, 영어: Hindsight bias) 또는 후견지명(後見之明)이란 일어난 일에 대해 원래 모두 알고 있었다듯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이 발생하기 전 생각해 놓았던 것이 왜곡되어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후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위키 백과>          



대화를 망치고 나아가 인간관계의 단절을 불러일으키는 지름길이 바로 상대를 판단하는 말이다.  판단하는 말 중 대표 주자가 다음의 말이 아닐까 싶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럴 거 같았어.    
왠지 그럴 거 같더라니.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할 때 자동적 사고의 회로가 가동된다. 판단, 비난, 비교, 강요, 합리화 등이다. 그중 후견지명이 발휘되는 것은 상대를 ‘판단’할 때이다. 판단은 지금까지 살면서 쌓아 온 경험과 정보가 뒷받침된다.      


나를 스쳐 지나간 지인 중에 ‘그럴 줄 알았다’ 또는 ‘그럴 거 같았다’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의 대상이 나일 때는, 내가 읽기 쉬운, 뻔한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사람의 어머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 말을 하실 때마다 지인은 “엄마가 점쟁이야?”라고 되받아쳤다고 말한 적이 있다. 듣기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그 문제의 말을 사용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듣기 싫은’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해서 타인에게 다시 방출하는 것이 사람이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공통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깊게 봄으로써 여러 인간을 깊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나를 관조하기 시작하면서 가정 언어의 대물림이 일어나는 생생한 현장을 포착했다. 내가 어릴 때 듣기 싫었던 말, 말투, 태도를 ctrl+c -> ctrl+v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3인칭 시점으로 포착했을 때,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매번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살 수 없다. 후견지명이 발생하는 이유는 신이 내려서가 아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기억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온라인에 떠도는 심리 테스트에서 ‘우울증 의심’이라는 결과를 받았다고 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친구가 이전에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재구성된다. 그 순간 “내가 너 그럴 거 같았어.”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후견지명은 또한 ‘낙인이론’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술을 끊겠다고 말한 배우자가 한 달간 금주를 잘하는 듯하더니 기어코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다른 배우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나의 촉이 틀리지 않았다고 의기양양해진다. 술을 안 마시는 기간 동안 쌓였던 믿음이 새로운 정보로 인해 불신으로 재구성되는 순간이다.      


건강 염려증이 지나친 사람 또한 사후 확신 편향을 자주 보인다. 유튜브나 검색 등을 통해 온갖 질병을 습관처럼 찾아보다가 그중 하나라도 진단을 받으면 ‘이럴 줄 알았다’고 하는 식이다.      


후견지명은 잘못된 메타인지의 예이다. 자신의 지식과 촉에 대해 과잉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사후 확신 편향을 '뒷북 편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후견지명을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사용하면 결과가 사뭇 달라진다.   

   

부정적인 상황이 아닌 긍정적인 결과에 사용할 때이다. 어떤 노력의 결과가 긍정적일 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말은 그간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말이 될 것이다.     

 

사후 확증 편향을 완전히 없애고 살 수는 없다.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 ‘과잉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는지 스스로를 관조해 보면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자제함으로써 인간관계에 스크래치를 하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표지 그림 : ‘The Fortune Teller’ (c. 1595) by Caravaggio. Oil on canvas. 99 x 131 cm. Louvr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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