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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19. 2024

장난과 공감

님아, 그 장난을 멈추시오

   

캐나다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캐나다 이민 가정 한국인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혼 절차 중에 법원 관계자가 아이들을 인터뷰 하는 과정이 있었다. 부모의 평소 행실, 학대는 없었는지, 어떤 부모와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지 등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아빠가 평소에 어떤 식으로 아이들과 놀아 주냐는 질문에 아이가 ‘똥침’을 언급했고, 면접관은 이것을 ‘성추행’으로 기록했다.    


나는 ‘똥침’이 성추행이라는 얘기를 처음으로 듣고 조금 놀랐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하다. 내가 어릴 때 아이스케키나 똥침은 그냥 놀이였다. 중학교 때는 체육복 바지 끌어내리기 장난도 친 기억이 있다. 이런 장난들이 성추행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앞에 나열한 일들을 당했을 때 행복하거나 기쁘지 않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래전에 읽었던 육아책에 ‘아이가 싫다고 하면 멈춰라’는 말이 있었다. 아이가 귀여워서 꽉 안고 놔주지 않거나, 싫다는데 억지로 끌어당기다가 결국 아이의 울음이 터져야 행동을 멈추는 어른들이 있다. 울음마저도 귀엽다고 생각한다. 우는 게 귀엽다고 일부러 물어서 울리는 사람도 보았다. (살짝 물었다고는 하지만 경악!!)    


아이가 싫다는 의사표현을 했음에도 어른이 멈추지 않으면 아이는 ‘아, 좋다는 표현은 이렇게 하는구나.’를 학습하게 된다.      


어릴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아빠의 ‘옆구리 찌르기’였다. 내가 아빠 옆을 지나가거나, 아빠가 내 옆을 지나갈 때 아빠는 꼭 옆구리를 찔렀다. 항상 아빠가 지나가면 긴장하며 옆구리를 경계해야 했다. 아빠의 옆구리 찌르기는 일종의 애정 표현이었지만 나는 너무 싫었다.     


싫다고!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아빠는 계속 찔렀다. 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 ‘정말 싫다’며 짐승 같은 포효를 한 번 하고 나서야 옆구리 찌르기는 긴 역사의 막을 내렸다.      


얼마 전, 맘카페에 올라온 사연을 읽고 ‘장난’의 경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가 올린 사연이었는데, 남편이 아이들에게 장난을 너무 많이 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자녀가 소중히 여기는 장난감을 숨긴다거나, 책꽂이에 꽂힌 책을 뒤집어 놓고, 방에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서 어질러 놓는 식으로 장난도 정성이라는 글이었다.      


문제는 자녀들이 하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남편은 재미만 있는데 아이들이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문득 개콘 황현희 씨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 아빠는 왜 이러는 걸까요?     



사람들은 왜 장난을 칠까? 친해지고 싶고, 웃음을 유발하고 싶고, 혹은 진짜로 괴롭히고 싶은 마음 등이 있을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장난은 당한 사람도 재미있을 때 장난으로서 유효하고 무해하다. 그런데 그 뻔한 게 잘 안 지켜진다는 게 문제다. 장난을 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더 가까워지기 위한 간 보기 같은 과정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이 재미가 없다는 데도 계속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공감 능력의 부족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타인이 ‘싫다고’ 느끼는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체적 장난뿐 아니라, 언어적 장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신체를 희화화하거나, 행동의 실수를 표적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놀리는 장난은 재미없다.      


요즘 한국 초등학교에서 ‘경계존중’ 교육을 한다는 걸 알았다. 교육 과정에서 글 앞에 말한 ‘똥침’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난을 많이 칠 확률이 높다. 괴롭힘과 장난의 경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무해한 장난이 어떤 것인지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된다. 입장 바꿔서 생각했는데도 나는 너무 재미가 있다면 SM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남이 싫다고 하면 즉시 멈춰야 한다.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 





표지그림 : <The Mistletoe Bough> 라는 책에 삽입된 그림, 18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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