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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18. 2024

쉬는 게 뭐죠?

먹는 건가요?


신혼여행을 발리로 갔다. 신혼 여행지를 고를 때, 남편은 어디든 좋으니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어디든 좋으니 수영장만 크면 된다고 했다. 수영에 재미를 붙이고 새벽 수영도 줄기차게 다니던 시기였다.      


발리에서 수영장 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리조트를 찾았고 신혼여행지로 낙점되었다. 열대의 무성한 숲길을 뚫고 들어간 절벽 끝에 위치한 곳이다. 플루메리아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들이 열대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절벽 아래의 움푹 파인 공간을 활용해서 만든 바에는 힙한 음악이 흐르고 모히토가 제공되었다. 글자 그대로 낙원이었다.

      

나와 남편은 체크인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버기를 불러 메인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적당한 위치의 비치베드에 타월을 펼쳤다. 남편은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준비운동을 정석대로 마친 뒤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물부림이 시작되었다.      


자유형, 배영, 평영, 간간이 접영을 하며 올림픽 수영장 크기의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잠시 쉬려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남편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전지훈련 왔어?     


남편은 “여기, 너처럼 맹렬하게 수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라고 했다. 수영장을 둘러보니 유유히 유영을 하는 사람, 연인끼리 물속에서 꽁냥대는 사람들뿐이었다. 수경까지 쓰고 숨을 헐떡이며 수영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휴식 모드다.      


오래전, 14k 골드 주얼리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출근을 하면 쉬지 않고 움직였다. 품질보증서에 도장을 찍고, 물건을 재배치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고, 쇼케이스의 유리를 갈아 없앨 기세로 닦아댔다. 유리에 남은 쪽지문도 용납할 수 없었다. 점장님과 다른 직원은 그런 나를 보며 ‘힘들지 않냐, 참 부지런하다’고 해주었다.      


그런가? 정말 부지런한가? 


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외부에서 보면 부지런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계속 일을 벌이고 무언가를 한다.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이것은 불안과 관련이 있다.      


초자아가 강한 사람이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진다. 마음속의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고 전기충격기를 쏘며 움직이라고 한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이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남편이 구데타마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문화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침대에 오래 누워 있을 때는 ‘숙취’에 시달릴 때 외에는 없었다.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받을 때, 침대에 누워서 뒹굴 거려도 된다고 하셨다. 선생님 말씀대로 정돈된 침대 위에 슬며시 올라가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괜히 부끄럽고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몇 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몸을 일으켰다.      


나는 진정한 휴식이 뭔지 잘 모르는 거 같다. 여행을 가도 호텔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뛰쳐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독 따위는 모르쇠로 모든 캐리어에서 짐을 꺼내 정리를 한다.    


취미 삼아 그림도 그려봤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휴식이 아니라 영혼을 갈아넣는 시간이 되었다. '적당히'라는 말이 내 언어 사전에서 누락 된 듯 하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움직이고, 밤이 되면 침대 옆에서 폼롤러로 온몸을 문지르며 마무리한다.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 어젯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나를 덮쳤다.      


사람들을 보면 직장도 다니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악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여행도 다니며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거 같다. 부분은 전체의 합이라는 개념이 나에게 사뭇 다르게 적용된 듯하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행동들을 한 데 모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잊을 만하면 엄마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살살해.     


최근에 '참, 열심히 산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살살할 때가 온 것 같다. 오늘은 쉬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는 초자아의 손목을 덥석 잡아본다. 날씨가 도와준다. 폭설이 내린 덕에 오전 크로스핏이 취소되었다. 학교도 휴교다. 오늘은 구내염에게 비타민을 공급해 주며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 그런데...... 기회는 지금이다!!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대체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표지그림 :Frederic Leighton, <Flaming June>, Museo de Arte de PoncePonce, Puerto R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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