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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20. 2024

헤어드라이 명상

신박한 요물과 함께 하는 마음 챙김

       

명상(瞑想·冥想, 영어: meditation)이라는 말을 들으면 전형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헐렁하고 편한 옷을 입은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을 무릎 위에 놓는다. 티베트 싱잉볼이 울리거나 졸졸졸 물소리가 흐르는 BGM이 깔린다. 아로마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디퓨저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명상은 휴식을 초월한 깊은 이완이다. 마음의 잡생각을 없애고 완전한 내적 고요 상태에 들어가도록 이끄는 활동 아닌 활동이다. 미국 심장협회에서는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이 심혈관 질환을 줄일 수 있다고 적극 추천한다.

      

실제로 명상을 하는 동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여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명상은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편도체를 안정화시킨다. 분노와 스트레스가 가라앉는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명상만이 명상이 아니다. 요즘은 활동성 명상이라고 해서 음식을 먹으며 하는 먹기 명상, 걷기 명상뿐만 아니라 수영, 하이킹, 심지어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싱잉볼을 사고 명상 피라미드를 사는 만발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명상은 나의 마음을 챙기기 위한 행위이다. 판단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마음 챙김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활동 중에 발생하는 내 몸이 느끼는 감각, 떠오르는 생각, 일련의 느낌들을 편견이나 판단 없이 바라본다. 유명한 방법 중에 하나가 ‘건포도 명상’이다. 건포도 한 알을 놓고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색을 살피고 입에 넣어 굴리고 느끼며 변화되는 신체적 감각을 알아차리는 마음 챙김이다.   

   

요즘 내가 즐기는 명상은 ‘헤어드라이 명상’이다.  


작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에어스트레이트’ 광고를 보게 되었다. 광고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이슨 공홈에 접속했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했다. 가격이 요즘 말로 후덜덜했지만 생일도 되고 해서 그냥 질렀다.      


긴 머리를 가진 사람은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말린 후, 필요시 다림질(판고데기)이나 굴림질(봉고데기)을 해 줘야 한다. 내가 구입한 '에어스트레이트'는 드라이와 다림질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기특한 녀석이었다. 이런 요물같으니!!!   


내 머리카락은 20대에는 쭉쭉 뻗은 대쪽 같은 생머리였다. 그런데 30대가 지나고 40대가 되니 머리카락이 구불구불해졌다. 세월에 진 굴곡만큼 머리카락에도 굴곡이 생기는 모양이다.     


신박한 요물 덕에 나는 헤어드라이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젖은 머리를 타월로 꼼꼼하게 물기제거를 한다. 이 과정부터 명상의 시작이다. '에어스트레이트'로 두피를 말리고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적당히 날려준다. 그리고 섹션을 네 군데로 나누어 집게핀으로 고정시킨다.  

    

머리카락을 파스타 일 인분보다 적게 잡고 '에어스트레이트'를 펼쳐 덥석 물어준다. 강력하고 일정한 모터소리가 싱잉볼을 대신한다. '에어스트레이트'가 훑고 지나간 자리의 굴곡이 말끔하게 펴진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감사하게도 펴야 할 머리카락이 (아직) 많다. 촘촘하게 구김을 펴는 날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팔도 아프다. (에어스트레이트의 최대 단점 : 무거움) 귀찮다고 대충 뭉태기로 떠서 드라이를 하면 명상의 효과도 떨어진다.      

   

이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보고 듣지 않는다. 어차피 모터 소리가 하도 커서 음악을 틀어놔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저 내 머리카락의 펴짐에 집중한다. 나를 시달리게 하는 잡념을 드라이어의 바람과 함께 날려버린다.  

    

방황하는 나의 굴곡진 마음을 곧은 수평의 상태에 가깝게 놓아본다. 뜨거운 바람에 쭉쭉 펴지는 머리카락을 보다 보면 구겨진 내 마음도 함께 펴진다.      




머리카락이 곱슬이 되는 이유는 결국 '노화'였다. 명상의 기회를 준 '노화' 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         


 실제로 모발의 두께는 10세 이후 증가해 40세 전후에 최고로 두꺼워졌다가, 이후로는 얇아진다. 모발의 곡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증가해 곱슬곱슬한 형태를 보인다.
<헬스 조선>  



https://youtu.be/3ucfKv2YbU0?si=a-adQ16nfZwtKyDF





표지그림 : <Golden Hair> - Frederik Hendrik Kaemmerer(Dutch painter),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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