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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22. 2024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힐링한다

      

모든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고 학령기가 되면 선생님, 친구들과 교류를 한다. 이 모든 관계에서의 영향이 비빔국수처럼 한데 엉기고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배경, 배움, 신념의 차이가 다름에 대한 이해를 터득해 나간다. 인문학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다양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면서 덩달아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말도 유명해졌다. 에너지 뱀파이어가 꼭 나르시시스트는 아니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면 에너지 뱀파이어에 해당된다. 대화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며칠간 불쾌한 여운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일명 ‘기 빨리는 사람’이다.  

    

나 같은 경우는, ‘죽지 못해 산다’, ‘지겨워 죽겠다’와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나면 3일간 어둠에 잠식당한다. 헤어지고 난 뒤부터 기운이 빠지기 시작해서, 사흘째 되는 밤에 극도의 피곤함에 절어버린다. 기절하듯 잠이 들고, 나흘째 아침이 되어야 개운하게 맑아진다. 부정적 에너지의 파급력이 대단하다.

 

에너지 뱀파이어는 현실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처럼 인터넷 속을 부유한다. 내가 가입한 여러 개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매일 백인백색의 글이 익명성 보장을 담보로 생성된다.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으로 자기 검열을 하며 수위를 조절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윤리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글이나 댓글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 또한 에너지 뱀파이어에 속한다.     


얼평, 몸평을 포함한 성적인 농담, 비방과 비난은 그래도 양반이다. 인성을 의심하게 하는 상스러운 욕설을 담은 글을 보고 나면 정말이지 ‘안 본 눈’을 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안 보면 되지, 왜 봐 놓고 뭐라고 하냐.’는 억지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시퍼렇게 뜨고 있는 눈은 글을 읽을 수 있고,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염에서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 

     

악성 댓글이나 욕설은 표적이 된 한 사람만이 감내해야 하는 폭력이 아니다. 일대 다수를 향한 폭력이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선을 훌쩍 넘어버린 사람을 보면 대체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사실 에너지 뱀파이어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36계 줄행랑이다. 요즘 말로 ‘돔황챠’이다. 적절한 타이밍을 알아차리는 지혜와 더 이상 기 빨리지 않고 도망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인터넷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언제든 온라인을 누비고 다니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만날 수 있다. 환란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굳이 내 에너지를 허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잘 쓰인 글, 온화한 그림, 멋진 음악을 듣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악성 댓글에 오염된 나의 눈을 정화시킬 곳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내게 아주 좋은 정화처이다. 긍정적이고 반듯한 생각을 담은 정제된 글, 톡 쏘는 유머가 상쾌한 글들을 보며 상식의 부재에 대한 절망감을 상쇄한다.       


나만의 속담을 만들기로 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힐링한다.      



악을 악으로 전이시키지 않고 악을 선으로 정화시켜 본다. 




사이버 폭력을 근절합시다!!!




표지그림 : 조르주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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