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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25. 2024

편안함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돈 내고 노동을 체험한다.


한국은 두 다리를 움직일 기회가 많다. 대중 교통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역 까지 걷고, 역 안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하루에 소모 가능한 칼로리가 상당하다. 외식을 해도 과식했다 싶으면 30~40분 걸리는 정도라면 걸어서 집에 갈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로의 이주는 내 생활 습관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적도 주변인지라 더워서 걷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인도 정비가 잘 안 되어 있다. 인도가 끊기거나 하수구 뚜껑이 파손되거나 해서 일정 구간 외에는 걷기가 용이하지 않다. 게다가 오토바이 날치기가 많기 때문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차를 많이 이용하게 되었고 그 생활은 캐나다에서도 이어졌다. 


나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더 줄어들고 있다. 음식을 공수하는 방법에서부터 수렵채집 시대와는 천지 차이가 난다. 배가 고프면 돌도끼를 들고 들짐승을 잡으러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지금은 배가 고프면 배달앱을 켠다.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푸짐한 음식이 집 앞에 뚝딱 도착한다. 


농경사회가 되어 정주를 하게 되었어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원활하게 식료품을 수급할 수 있었다. 밤 10시에 출출하다고 엽떡을 시켜먹을 수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되면서 자본가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되었고 노동자는 기계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집을 짓기 위해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베고, 땅을 파고, 돌을 나르는 작업은 힘이 좋은 무쇠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난방을 하기 위해 뗄감을 구하려 다닐 필요가 없다. 온도 조절 스위치만 돌리면 따뜻한 집이 완성된다. 이제 배달앱만 켜면 된다. 현대인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더 격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직업으로서의 육체 노동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효율적인 몸부림을 하려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한국에서 인싸 운동이라고 불리는 F45(호주에서 탄생)를 처음 접한 건 말레이시아에서였다. 친 호주 국가 말레이시아에는 F45가 한국에 상륙하기 훨씬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이트 클럽인지 짐Gym인지 분간이 안 가는 음량의 신나는 음악이 고막과 심장을 쾅쾅 때렸다. 내가 다니던 지점은 미국 국제학교의 엄마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엄마들은 40초 퍼포먼스 후 20초 쉬는 시간에 환호성을 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녀들의 저세상 텐션에 덩달아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나는 F45를 오전에 가는 나이트 클럽이라고 규정했다.      


첫 한 달 가량은 F45에서 운동을 하며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잘못했습니다.” 소리가 나왔다. 사과의 대상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과였다. 

     

운동이 익숙해지고 재미가 붙으면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F45에서 수행하는 운동들 중 많은 수가 오래전 지구에 살았던 선조들의 그 어떤 몸부림들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F45에는 이 해머 운동이 없어졌다. 말레이시아에서 이 해머를 휘두를 때면 장작을 패거나, 망치질을 하거나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현대인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을 동작이다. 




무거운 물건을 밀거나 당기거나.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는 책장이나, 식탁, 소파의 위치를 바꿀 때 정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유난히 힘들어하는 로프 운동이다. 보기보다 힘이 많이 든다. 우리의 선조들은 탈곡을 하거나 마차를 전진시킬 때 쉬지 않고 로프처럼 생긴 무언가를 휘둘렀을 것이다. 



공의 무게는 4kg, 8kg, 12kg ...24kg , 4의 배수로 올라간다. 이 공을 들어서 바닥에 내리 치거나, 등 뒤로 넘기는 동작을 한다. 힘이 좋은 선조는 큰 돌을 던저 사냥하는 데에 이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공사 현장에서는 무거운 벽돌을 몸체만큼 가득 싣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기 엄마들은 아기띠에 10키로가 넘나드는 아기들을 넣고 이동한다. 노동과 운동은 다르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해부학적으로 근육의 쓰임을 분석하여 무거운 물건을 근육향상에 이용한다. 



로잉 머신계의 명품이라고 불리는 concept2 를 F45에서 탈(?) 수 있다. 속도를 올리라고 트레이너가 옆에 와서 나를 쪼아대면 나는 호수에 빠진 아이를 구하러 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모성은 강하다. 상상만으로도 속도가 올라갔다. 




노동에서 운동으로 변천한 역사를 말하자면 러닝머신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 러닝머신이라고 불리는 Treadmill도 아주 오랜 역사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고대시대나 중세시대에는 무언가를 옮기기 위해서 사용하던 형태의 트레드밀은 사람들의 신체를 강건하게 해 주었다. 근대 영국에서는 감옥의 죄수들에게 형벌에 더해 풍차의 동력을 얻는 형벌 기구였다.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운동기구와 생김새는 더 비슷하다. 




지금 누리는 편안한 생활은 그 옛날 선조들이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시켜준 산업과 과학의 발전 덕분이다. 덕분이기도 하고 때문이기도 하다. 몸을 덜 움직여도 되는 편안한 생활 덕에 현대인은 맹수와 싸우는 대신 체지방과 성인병과 싸우게 되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그런데 옛 선조들의 노동에서 착안한 동작들이 포함된 이 힘든 F45가 인싸 운동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편안함의 노예가 된 나는 옛 선조의 영혼을 담은 몸부림을 하기 위해 오늘도 F45에 간다.




그림들 : 구글 검색

*브런치에 F45를 검색하면 상세하게 소개해주시는 작가님들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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