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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r 24. 2024

아이가 발달하는 동안

나는 성장한다

   

이번 학기에 전공필수인 발달심리학을 수강하고 있다. 아이를 12년 동안 키워서인지 수업 내용이 꽤 흥미롭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영역으로 말이다.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는 수업시간이다.    

  

아들이 아기일 때 내가 재미있어 했던 것이 있다. 입 주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 아기가 손가락이 있는 방향으로 입을 뻐끔거리며 움직인다. 정말 귀여웠다.      


시어머니나 이모님 같은 어른들은 이것이 아기가 배고프다는 신호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근원반사’였다. 생후 3개월 정도가 되면 사라지는데 허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 뻐끔대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던 탓에 지금도 아들에게 장난을 친다. 아들 입 주변을 톡톡 건드리면 아들은 마치 상어처럼 입을 벌려서 내 손가락을 물려고 한다.     

 

교재에 나온 치아발달 순서의 그림표를 보니 아들의 첫 유치가 빼꼼 올라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당시에 주말에만 한국어 개인 교습을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을 나섰다가 오후 서너시가 되면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아기를 하이체어에 앉혀두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왜 꼭 내가 집에 들어오는 그 순간에 청소를 하고 있었을까.......)     


어느 날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진공청소기를 돌리다가 “얘, 이 나왔어.” 라고 했다.      


아이의 아랫입술을 살짝 내려 보니 하얀 이 두개가 뺴꼼히 올라온 게 보였다. 어찌나 귀여웠던지 사진도 찍고 아이를 붙잡고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났다.      


아기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놀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까꿍놀이이다.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리거나 누워있는 아기의 발로 내 얼굴을 가렸다가 보여주면 아기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이를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의 감각 운동기에서는 대상영속성의 습득이 아직 안 되어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대상영속성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아도 사물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사실, 이 놀이도 가끔 아들에게 해 보는데 아들은 내키면 몇 번은 맞춰 춘다. 하지만 대체로 영혼 없이 “하하~ 재미있다.” 라고 한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나에게는 큰 웃음을 준다.   

   

영아들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반복 학습하면서 ‘상징’을 사용할 수 있는 단계가 온다. 전혀 관련이 없는 사물을 어떤 특정한 것으로 상정하고 노는 것을 상징놀이라고 한다.      


돌멩이를 빵이라고 한다거나, 나뭇가지를 칼이라고 하며 놀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데 이러한 상징의 사용은 인지 발달에서 감각 운동기가 끝나는 아주 중요한 신호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아들에게 장난감을 참 많이 사주었다. 새 장난감을 샀다가 아이가 더 이상 안 갖고 놀면 중고로 팔고 그 돈으로 또 다른 장난감을 사는 것의 연속이었다. 주변에서 장난감 선물도 참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어떤 장난감도 그렇게 오래 갖고 놀지 않았던 거 같다. 오히려 밖에 나갔다가 주워온 나뭇가지나 빈 휴지 박스를 갖고 더 잘 놀았던 생각을 하면 그 수많은 장난감들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의 학습지나 영유아 전집들을 보면 서열화, 전이적 추론, 분류 등을 다룬 것들이 많다. 비행기, 강아지, 곰, 토끼 등을 그려놓고 관계 없는 것을 고르게 하거나, 비행기, 기차, 자동차, 자전거를 두고 어떤 게 가장 빠르거나 느린지를 묻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피아제의 발달 단계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되고 개발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괜히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제의 이론과 실험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세 산 실험’이었다. 아이와 인형이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 위에 세 산이 있다. 아이가 보는 방향에서는 세 개의 산이 모두 보이지만 인형이 앉은 방향에서는 큰 산에 가린 작은 산이 보이지 않아 모두 두 개의 산만 보인다.     

 

이때 아이에게 인형이 몇 개의 산을 보고 있을거 같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보는 그대로 ‘세 개의 산’이 보일 거라고 답을 한다. 즉,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능력이 아직 없음을 알 수 있는 실험이다.     

  

예전에 미혼의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친구는 엄마인 내가 아픈데도 놀고 싶어 하는 아들을 보고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어떻게 엄마가 아픈데 자기 놀고 싶은 마음만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 라고 친구에게 설명했다. 사실 피아제를 알고 그렇게 설명한 건 아닌데 피아제의 세 산 실험을 보고 그때의 기억이 나서 반가웠다.      


요즘은 비혼주의도 증가하고 딩크족도 늘어나는 추세인 듯하다.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국가의 존립 위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러모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경제적인 문제뿐 만이 아니다. 나는 아이를 낳고 ‘걱정거리를 낳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은 살면서 한 번은 겪어볼 만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한 인간의 탄생과 발달을 직접 경험하며 나라는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험이 바로 육아가 아닌가 싶다. 






표지그림 : Joaquín Sorolla, <On the Beach>, 1908


*발달심리학, 성현란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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