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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r 30. 2024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암수범죄를 말하다

     

캐나다에 자리를 잡고 두 달쯤 지난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필드 트립으로 아이스하키를 관람하고 온 아들은 ‘하키 놀이’에 심취했다. 월마트에서 장난감 하키 스틱을 샀고 휴대용 티슈팩을 하키 퍽으로 삼아 혼자 집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몰고 다녔다.     

 

하루는 나에게 같이 하자고 졸라대서 나도 ‘하키 놀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두꺼운 박스를 하키스틱 모양으로 오려내고 거실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아이는 극도로 신나 했고 흥분은 극에 달했다.      


아이와 가까이 지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들이 극한의 재미를 느낄 때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모르는 상태에서 들으면 심하게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이가 너무 흥분한 거 같아서 나는 놀이 중단을 외쳤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경찰에 신고 들어갈 거 같다고 하면서 일단 물을 마시라고 했다.      


그때였다.      


띵동~하고 벨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무슨 일이지? 하고 문에 난 동그란 창으로 내다보았다. 처음 보는 금발의 여성이 서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옆집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키워드는 두 개였다.      


Yelling and crying    

  

하키놀이를 한 시간은 정확하게 딱 4분이었다.    

  

북미에서는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신고 들어간다고 하더니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는 문을 더 크게 열고 우리의 어설픈 하키 스틱을 보여주며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아~그러냐고 하면서도 내 아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떠나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눈빛이었다.     


단지 시끄러워서 왔다고 하기엔 그 집에서는 아들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노는 날이 더 많았다.   

   

이번 학기에 교양 과목으로 ‘현대 사회의 범죄’라는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가정 폭력에 대한 내용이 다음 주에 나올 예정이라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영화 <어린 의뢰인>과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를 시청했다.      


나도 결코 단 한 번도 아이를 학대한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아이가 어릴 때 등짝 스매싱도 때려 보았고, 꿀밤도 줘 봤다. 9살 이후로는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으니 9년 동안 등짝 스매싱은 총 10회 미만이고 꿀밤은 2회다. 이렇게 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손을 대 놓고 내가 몇 날 며칠을 아니,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영국의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면서 불거졌다. 고작 100년도 안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아동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정인이 사건으로 아동 학대가 고름이 터지듯 터져 나왔다. 무용학원 원장의 학생 학대, 영화 어린 의뢰인의 실화인 칠곡 계모사건, 의붓아들을 캐리어에 넣어 사망하게 한 사건, 굶주린 여자아이가 지붕을 넘어 옆집으로 탈출한 사건 등등 일일이 이 화면에 담기에도 차고 넘친다.      


그러나 훈육과 학대의 경계선상에 놓인 가정이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학대에 대한 이미지는 폭력과 고문에 가깝지만 사실 학대는 그보다 더 우리의 양육에 가까이 있다. 


아이를 째려보는 눈빛, 한숨, 구박, 지나친 잔소리, 아랫사람 부리듯 무언가 지시하기, 투명인간 취급하기, 무관심 등등 모두 학대의 하나이다.      


몇 년 전 친정의 옆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고 했다. 중학생 정도의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매일같이 윽박지르는 소리,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고를 하고 싶은데 옆집이라는 걸 알고 복수할까 봐 무섭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경찰이 왔단다. 아마 다른 집에서 신고를 한 듯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이 이사를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지금 괜찮을까?      


나의 아이는 지금 괜찮을까?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나의 눈빛이 아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지는 않을까? 한 번도 화를 안 내고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가 나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아동학대’라는 단어를 알았는지 몰라도 아들은 방학 때 리딩 캠프에 가라고 하면 아동학대라고 반발을 한다. 네가 학원을 안 가면 ‘엄마 학대’라고 얼른 가라고 웃으면서 받아치지만 학대는 당하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UN 아동 권리 협약 제6조에 따르면 국가는 가능한 최대한도로 아동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 시작은 우리 가정,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될 것이다. 아동학대는 가정의 문제라는 생각은 암수범죄를 키운다. 아동학대는 사회의 문제이다. 



       


표지그림 : Johann Baptist Reiter 1813 - 1890), Portrait of Family Schegar, 1842 (842x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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