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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pr 02. 2024

삼대 여행 보이콧

저는 안 갈래요


삼대가 모두 모여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 관광지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일본 여행이라도 갔다면 1대 할머니(할아버지), 2대 엄마(아빠), 3대 손녀(손자)가 나란히 노천탕에 몸을 담그며 하늘에 쏟아질 것 같은 별을 헤아린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거라 상상하며 '삼대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 '삼대 여행'을 몇 번 해 보았다. 시댁과는 한 번, 친정과는 여러 번 여행을 경험했다. 


나쁘지 않았던 적도 있고, 여행 사진을 전부 삭제해 버릴 만큼 화가 났던 적도 있다. 분명한 건 삼대가 뭉쳐서 떠난 여행이 너무너무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다며 꼭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 '삼대 여행'은 친정 동생네 가족까지 함께 간 하와이였다. 며느리도 사위도 열외 없이 모두 동참한 진짜배기 가족여행이었다. 


원가족 멤버가 아닌 타인이 두 명이나 끼어있다 보니 다들 제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지 않았다. 누구누구라고 꼬집어 말하지는 않겠지만, 나름 체면을 차리느라고 좋은 사람들인 척 한 덕분에 이렇다 할 마찰 없이 무사히 여행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사위, 즉 남편 없이 부모님만 모시고 나와 아이가 함께 한 여행은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좋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까탈을 부리고, 아이는 아이대로 여행이 재미없을 뿐이었다. 


그럼 중간에 낀 나는 어떤가. 이렇게 해도 불만을 듣고 저렇게 해도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삼대 여행'운을 띄우셨다. 여행 아이디어는 아빠의 것이었다. 아빠는 꽤 오래전부터 홋카이도를 가고 싶어 하셨다. 그것도 꼭 나와 가고 싶어 하시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것

둘, 다른 모르는 사람들과 단체 여행 하기 싫다는 것


아빠가 사위까지 포함해서 홋카이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셨다는데, 아빠는 '삼대 여행'의 어떤 환상을 갖고 계신 듯 보였다. 올 초에는 미국에 사는 동생네까지 모두 같이 토론토에서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시기도 했다. 


토론토행은 내가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엄마는 아빠에게 '안나네는 바쁜 사람들'이라는 이유를 대며 여행의 꿈을 잘라내셨다. 


나는 홋카이도 '삼대 여행' 미래 추억에 빠진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에게 홋카이도 여행 얘기 들었어요. 아이가 아주 어리다면 모를까, 삼대 여행은 모두가 공평하게 즐겁기 힘든 여행이에요. 어르신들이 가고 싶은 곳은 10대 아이는 재미없고 10대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르신들은 재미없어요. 그리고 일본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은 어르신, 애 모두 재미 없는 곳이에요. 모두의 취향을 맞출 수 없어요. 


아빠는 순순히 홋카이도의 꿈을 접으셨다. 


혹자는 이런 나의 글을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그까짓 홋카이도 다녀와라, 너는 나중에 혼자 여행가면 되지 않냐. 


사람은 경험이 쌓이게 되면 개별 경험마다 달라지는 세부사항보다는 언제나 변함없는 핵심적 측면을 점차 더 강하게 표상하게 된다고 한다.*1) 부모님과의 여행은 여행지는 달라지지만 핵심적인 '특정한 표상'은 늘 같았다. 그 점이 나를 '삼대 여행'을 보이콧 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이다. 


나만 이런가 싶어서 검색을 돌려봤다. 마침 브런치에 한 작가님이 '삼대 여행'에 대한 글을 올리신 걸 찾았다. 그 글에서 여행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행은요. 삼대가 오는 게 아니에요. 제가 20년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거예요.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고단한 여행은 서운함을 쌓이게 해요. 어떤 자매분들은 싸우고 울면서 돌아갔어요.*2) 


나는 23년 3월에 아들과 둘이 일본 여행을 하면서 느꼈다. 이제 같이 여행하기 힘들겠다고. 옛날에 한 캠퍼 아버지가 쓴 글이 생각났다. 뉴질랜드로 캠핑을 가는데 10대 아들들에게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데리고 갔는데 애들은 전혀 즐거워하지 않았다며 괴리감을 느꼈다고 쓴 글이었다. 


안타깝게도 경험상 '삼대 여행'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굴러가지를 않더라는 개인적 소감만 남았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이가 삼대 여행을 모두가 만족하며 즐겁게 지냈다면 축하를 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내 주변에서도 그렇고 사위나 며느리와 함께 여행할 때 사위, 며느리 당사자가 아주 즐거워하는 걸 못 봤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까지는 아니어도 꾹 참고 가는 경우가 더 많더라. 내색을 안 할 뿐. 





표지그림 : James Tissot, <The Magi Journeying (Les rois mages en voyage)>, 1886-1894


*1) <발달심리학>, 학지사, -3장 기억의 발달 중 스크립트 기억의 발달 

*2) (원글에서 요약) <여행은 삼대가 같이 하는 게 아니다>, 하얀 밤


추가 :엄마와 결혼 전에 둘이 갔던 후쿠오카 여행과 엄마, 저, 15개월 아들과 함께 한 오키나와 여행은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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