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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Feb 03. 2024

친절은 경계를 허물고

방심을 비집고 들어와

         

세상의 사기꾼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사람들의 돈을 노린다. 호혜적인 관계인 척 꾸며 상대가 가진 것을 모두 갈취한다. 대출, 투자, 임대업 등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고액의 투자 유도는 고전적이고 전형적이다.

    

사기꾼은 명품으로 자신을 휘감아 포장한다.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화려한 생활을 SNS에 포스팅한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받은 돈의 이자나 수익금을 초반에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지급한다.     

 

완전한 신용을 확보한 후에 더 큰 금액의 투자를 유도하면 남은 일은 잠적이다. 친절함은 디폴트값이다.     


얼마 전 OTT에서 제작 방송한 사이비 종교 관련 프로그램이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한때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 사이비 종교는 치밀한 포교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움에 빠트렸다.      

그들은 조직화된 대본까지 만들어 포교를 했다. 포교라기보다는 덫이다. 짐 캐리의 <트루먼 쇼>가 생각난다. 치밀하게 짜인 판에 희생자는 심리적 지배를 받으며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사이비 종교단체는 타깃이 된 사람의 심리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파고든다. 마음에 상처하나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킬레스건을 노리는 그들에게 누구나 타깃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어 한다. 험난하고 야박한 세상에 누군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면 그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외로 젊은 대학생들이 이단에 많이 빠진다고 한다. 흔들리는 청춘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친절함은 그들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친절함의 탈을 쓴 늑대들이 온라인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심리적 지배를 무기로 하는 범죄의 피해자는 초, 중, 고등학생 같은 십 대 어린아이들이다. 바로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 그루밍이다.    

  

온라인 그루밍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 접한다. N 번 방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졌고 경계의 촉은 민감해졌지만 여전히 희생자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소셜미디어의 폐해로 자녀를 잃은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소매치기가 많았다.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 세상이 되어 소매치기는 업종을 전환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타심을 갖고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고 나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는 친절을 되돌려주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오랜 시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상호작용이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타심은 유전된 것이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친절했을 때 나에게도 이득이 오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타심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의심’과 ‘경계’이다. 나에게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은 없다. 


친절한 사람을 조심해라.     

 


이렇게 아이에게 말하면서도 씁쓸하고 염려스럽다. 친절 불신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더욱더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친절함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사랑을 가장한 이욕 충족의 검은 속내가 득실거 린다. 나 역시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에는 갑자기 친절해진다. (남편한테 뭐 사달라고 할 때는 바닥에 떨어진 상냥함 한 톨까지 끌어모아, '친절해진다')


적당한 친절의 경계를 질량 화해서 수치로 나타낼 수가 없으니 예방도 쉽지 않다. 크고 작게 깨지고 부딪히며 배워나가야 한다. 나의 아들은 온라인 게임 계정을 해킹당한 피해 전적이 있다. 수십만원 어치의 아이템을 모두 빼앗겼다. 고액의 예방접종을 했다. 


친절한 사람을 의심하렴, 경계하렴. (아니 그냥 다 의심하렴)
살면서 마음이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꼭 엄마에게 말해다오.   


   

아이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많은 아이들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이타적인 이기심이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만족을 충족하는 것이다. 비록 이기심에 희생당한 이타심이어도, 작은 친절을 받으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안도한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표지그림 : Paul Gauguin, <Vision After the Sermon(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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